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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임시수도 1023일” 그 위대한 역사를 만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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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조국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풍전등화(風前燈火)처럼 흔들릴 때 목숨 바쳐 대한민국을 지켜 낸 호국(護國)의 보루(堡壘)였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최전선이었다.

부산은 자유대한이 괴뢰와 오랑캐들로부터 무참하게 짓밟히고 강토가 불타고 있을 때 수많은 피난민을 지극정성으로 안아주고 보듬어 준 따뜻한 희망의 항구(港口)였다.부산은 공산도배(共産徒輩)들의 침노(侵擄)로부터 세계의 젊은이들이 피 흘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자유와 희생의 성지(聖地)였다.임시수도 부산 1023은 학문과 예술이 재생, 부활된 부산문화의 르네상스기였다.

부산은 1950818일부터 1026. 그리고 195114일부터 1953814. 두 차례에 걸쳐 1023일간 임시수도였다. 한반도 5000년 역사에 특정한 한 도시가 두 차례나 수도(首都)의 칭호를 부여받고 국가를 지켜 낸 역사의 현장은 부산이 유일(唯一)하다. 그러나 이처럼 위대했던 임시수도 부산, 1023의 자랑스런 역사는 그동안 무관심과 관리 소홀로 안타깝게도 잊혀지고 그 흔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임시수도 부산, 1023, 그 위대한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고 보존함은 이 시대 우리들이 해야 할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임시수도 부산당시 정부종합청사(중앙청)로 활용했던 경상남도 도청청사를 비롯해서 이승만 대통령 집무실(경무대)이었던 경상남도 도지사관사, 임시 국회의사당이었던 경상남도청 구내 무덕관(武德館) 건물, 부산시청 청사, 부산항 부두와 해운대 동백섬 탄약 부두,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며 전세를 역전시키고 내가 오늘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고 천명한 한국전쟁의 영웅 '월튼 워커' 8군사령관 집무실이었던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 워커하우스’. 서전(스웨덴) 병원, 5육군병원(미나까이 백화점), 피란민들이 살았던 아미동, 보수동, 대청동, 영주동, 초량 등지의 판잣집(하꼬방), 국제시장, 영도다리 밑 점바치길, 그리고 부산항으로 침투하여 후방교란을 노리던 천톤급 북괴 무장 수송선을 격침시키고 600여 명의 괴뢰군을 수장(水葬)시킨 청사포 앞바다는 대한해군의 백두산함이 거둔 대한해군 승전 1호의 빛나는 전적지(戰跡地)이다.

한국동란 당시 부산의 수많은 현장이 임시수도 부산의 역사를 증언할 전쟁 유적들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으로 피난온 문화예술인들의 발자취 또한 찾아내고 복원할만한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김동리의 소설 "밀다원 시대"의 산실이자 허기진 문화예술인들의 소통방(疏通)이었던 '밀다원' 다방. 건축가 김경업(UN묘지정문, 부산대학교 본관건물 설계자)이 설계하고 시인 조병화가 지은 송도 언덕배기 보리밭 자락의 패각의 집(貝殼)’ 은 박종화, 모윤숙, 이헌구, 김환기 등의 예술인들이 모여 집들이를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화가 이중섭이 은박지에 황소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주동의 어느 판잣집, 소설가 이호철이 부두에서 등짐을 날라주고 받은 일당 대신 양담배를 팔아서 국수를 사 먹으며 소설 공부를 했다는 초장동 어느 국수공장 뒷골방, 소설가 김용익이 겨울의 사랑이란 소설을 썼던 광복동의 어느 다방, 김경업이 파리에서 시인 조병화에게 보낸 엽서가 43년 만에 파리의 어느 우체통에서 발견돼 부산일보로 전달된 사연 등은 피난 문화예술인들이 남긴 문화유산의 희귀한 발자취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허기져 앉아 있는 피난 청년에게 울지 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를 간청하며 가슴으로 보듬어주던 대중가요 경상도 아가씨의 애절한 호소현장이기도 한 사십 계단 층층대, ‘굳세어라 금순아의 무대 영도다리, ‘이별의 부산정거장의 부산역, 이 모든 것이 내일을 알 수 없었던 임시수도 부산의 불안하고 암울했던 전시(戰時)의 시대상황이요, 그 어느 것 하나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부산의 문화유산임이 틀림없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귀중한 흔적들이 제대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니 참으로 통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임시수도 부산의 소중한 역사현장은 대부분 사라지고 그 일부가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헤밍웨이와 피카소가 한때 살았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고택들이 잘 보존돼 관광자원으로 소개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임시수도 부산"의 문화유산들이 자취를 잃어가고 있음은 가슴 아픈 일이다.

김영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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