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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어버이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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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 발이 다 닳도록고생 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5월이면 우리 국민들이 한번쯤 눈시울을 붉히며 부르는 이 노래는 자칭 국보1호요 한국문학 연구의 1세대인 무애 양주동님의 시를 이흥렬님이 읽고 감동해 곡을 붙인 노래이다. 본래 <어머니의 마음>이었는데 1956년에 정한 어머니날이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바뀌면서 노래 제목도 <어버이은혜>로 부르게 되었다.

천재시인 양주동박사는 5세때 아버지를, 12세 때 어머니를 여읜 분이라 누구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었으리라 짐작한다. 그가 어느 날 속리산 성불사에 노산 이은상, 미당 서정주시인 등과 방문했을 때 그곳 스님이 내어주신 <부모은중경>을 보고 시를 짓게 되었다고 양주동박사의 회고록에 전한다.

작곡가 이흥렬이 시 <어머니의 마음>을 만난 사연도 감동적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이흥렬은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청년이 었다. 그가 음악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작곡을 위해 피아노가 없으면 공부를 더 할 수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께 편지를 써서 “어머니, 피아노가 없어 음악공부를 계속 할수 없어 이만 귀국하려고 합니다.” 했다.

그러자 혼자 몸으로 아들의 유학을 뒷바라지하느라 늘어난 빚만 쌓였음에도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때까지 억척스레 동네 근처부터 시작해 산이란 산을 모조리뒤져가며 쉬지 않고 솔방울을 긁어모았다. 그렇게 불쏘시개로 화력이 좋은 솔방울을 팔아 거금 400원(1930년대 쌀 한가마는 13원)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다.

이흥렬님은 그 돈으로 피아노를 샀고 유학생활을 계속 할수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공부를 마친 '이흥렬'님이 제일 처음으로 작곡한 노래가 바로양주동님의 시 <어머니의 마음>이다. 이 노래의 토대가 된 <부모은중경>은 부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한 무더기의 뼈에 절을 올리시고 연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 설하시며 시작된다.

부처님은 부모님의 은혜 열 가지를 설하셨는데, 그 내용이 성불사에서 양주동박사를 만나서 시로 표현된 것이다. 또 조선 정조 때 양산 통도사의 한 법사스님이 어머니를 위해 읊은 게송도 가슴을 뭉클하게 해 소개한다.

“이 세상 어느 누가 가장 귀한 부자인가/ 이 세상 어느 누가 가장 궁한 가난인가/ 부모님 살았을 때 가장 귀한 부자이고/ 부모님 안 계시니 가장 궁한 가난일세/ 어머님 살았을 땐 밝은 낮과 같더니만/ 어머님 안 계시니 해가 저문 밤과 같네/ 어머님 살았을 땐 마음 든든하더니만/ 어머님 안계시니 온 세상이 텅 비었네”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다면 빈 하늘에 “어머니! 아버지!”그 거룩한 이름이라도 한번 불러보자.

[2021521일 제1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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