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1년 12월 05일

김문길의 역사이야기

日, 울릉도·독도 들어가는 어민 처형했다

 
 
 울릉도는 죽도이고 독도는 송도(松島)라 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주장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쇼와 42년 5월『역사학보』43집「 비평과 소개 죽도의 역사 지리학적 연구」란 글을 쓴 무로카 노부모(室賀信夫)는「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는 우산국으로 다 조선 땅이고 울릉도(죽도)에 해금령이 내릴 때 독도(송도)도 같이 내렸다」라고 했다.(161p-162p) 또는 1696년 5월에 안용복이 2차 도일할때「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地圖)를 가지고 일본에 가서 울릉도 부속 섬 독도는 조선 경상도에 속한다라고 한 것을 볼 때 일본막부는 울릉도 독도는 조선 땅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 죽도에 금지령은 독도(송도)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상기문서는 1838년(天保8)2월에 죽도(竹島)에 들어가면 극형에 처한다는「 御解書御諸本帳」문서이다. 이문서는 당시 시마네현의 통치자인 마쯔다이라가 하마다(浜田)의 각 어촌에게 보낸 문서이다. 문서내용은 밑줄 친 부분을 보면 ‘요나고(米子)의 선주 카이즈야하찌우에몬(会津屋八右衛門)이 지난해 무단으로 죽도에 들어가서 고기를 잡고 벌목을 했다는 죄목으로 극형(사형)에 처해졌다.
 
 앞으로 어촌민들에게 알려 죽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라’.이 문서는 당시 울릉도는 일본인들이 죽도라하고 독도는 송도라 불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문서가 내리게 된 동기는 안용복과 박어둔이 1693년 4월 18일에 일본에 가서(납치되어)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이라고 항의한 후 막부는 1696년 1월 28일 울릉도와 독도에 해금령을 내렸다.
 해금령이 내려도 어선선주인 카이즈야는 밀업을 했다. 밀업을 했다는 이유로 막부는 사형에 처한 것이다. 사형집행 후 혹시나 울릉도에 들어가는 어민이 있을까봐 이번에는 어촌의 촌장들에게 명령하고 촌장들이 서명날인까지 한 170년 전의 문서이다. 당시 일본은 도장을 사용했던 모양이다. 또 울릉도(죽도)에 들어가면 처형한다는 문서라고 하는데 이는 안용복이 일본에 가서「 조선팔도지도」를 보여주면서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는 조선의 부속 섬이고 경상도에 속한 것이라 분명히 말을 했으며 일본에 일부 연구자들도 울릉도에 들어가면 처형한다는 것은 독도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자료는 일본 시마네 현 하마다역사 사료관에서 입수한 것입니다. ④ 울릉도 독도 해금령 후 업자들 사형 1. 하찌우에몬은 사형당한 직전에 신분조서를 받을 때 “죽도(울릉도)외에 다른 섬(송도)은 이시미국(石見國)해안으로부터 북쪽에 있는 해상 7~80리 거리에 있는 송도(현재 죽도)라고 부르는 작은 섬이 있다. 송도 죽도 양 섬은 전부 사람이 안사는 공도(조선 조정 정책)섬으로 되어있다.
 
 그대로 방치 해 두면은 너무 아깝다. 벌목도 해오고 어업도 하면 개인의 이익은 물론이거니와 막대한 국가이익이 된다. 이미 스보(周防 : 현야마구찌) 사무라이도 거액을 벌어 온 적이 있다. 양 섬에 도해를 원합니다.” 라고 유언을 하고 죽었다. (밑 문헌 줄친 부분 참조) 1696년 1월 28일에 내린 울릉도 독도 해금령 이후 계속 어민들이 몰래 어업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때, 다시 막부는 조선 해역에서 어업행위를 하지 말라는 내용의 경고판을 해안 곳곳에 설치했다.
 
 필자는 최근 일본 돗토리현 하마다시의 향토사료관에서 ‘도해(渡海) 금지령’을 상세히 기록한 가로 1m, 세로 50㎝ 크기의 고사쓰(高札.경고판)를 발견했다.(竹島渡海禁止의 高札) 1839년 2월 나무로 제작된 이 경고판에는 “하찌우에몬이라는 사람이 다케시마(竹嶋)로 도해한 사건을 엄밀히 조사해 우에몬과 그외 사람을 처형했다. 다른 나라로 도해하는 것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배와 만나는 것도 엄하게 다스린다.” 고 기록돼 있다.

 이 안내판에는 또 “1693년에는 조선에 들어가 조업을 했으나 도해금지령이 내려졌다” 면서 “고다이칸(御代官치안을 담당한 사무라이)은 각 지역 연안항구에 이를 공시하고, 경고판을 세운다.” 고 적혀 있다.

 에도 막부가 1696년 어민들에게 울릉도 및 독도로의 출항을 전면 금지했으나 이를 어기는 어민들이 나오자 시범 케이스로 처형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경고판을 세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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