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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의 역사이야기

“ ‘죽도’ 는 조선땅” 조업금지령내렸던 일본


 
 그러나 3년 후 1969년 1월28일에 막부는 안용복의 항의를 받아들여 울릉도 독도는 조선 땅이니 오오야 무라카미 어선이 들어가지 말라는 금지령이 내렸다. 이것은 오로지 안용복의 국토수호정신에서 내려진 것이다.
 
금지령을 번역해 보면,

「예전에 마쓰라이라 신타로가 인주와 백주의 영주였을 때 말씀드려서 백주요나고 주민 무라카와 이치베에와 오오야 신키치가 죽도에 도해하였고 지금까지도 어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죽도에 도해하는 것을 금하라는 명이 계셨으므로 그 뜻을 받들도록 하라」
「예전에 마쓰라이라 신타로가 인주와 백주의 영주였을 때 말씀드려서 백주요나고 주민 무라카와 이치베에와 오오야 신키치가 죽도에 도해하였고 지금까지도 어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죽도에 도해하는 것을 금하라는 명이 계셨으므로 그 뜻을 받들도록 하라」

정월 28일
쓰치야 사가미노카미 마사나오
도다 야마시로노카미 다다마사
아베 붕고노카미 마사타케
오오쿠보 가가노카미 다다아사
마쓰다이라 호키노카미님
이와 같이 독도에 가지 말라는 문서이다.
 
안용복 2차 도일

 안용복 2차 도일자료는 어느것보다 귀중한 것은
 
「겐로쿠9 병자년 조선주착안 1권 지각서(元祿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券之覺書)라 할수있다.」
 
 이 사료는 1696년 5월 18일 안용복 일행이 2차 일본에 도착할 때 말과 거동을 상세히 기록한 문서이다. 이 문서는 이즈모 나라(出雲) 지금 시마네 현(島根縣) 번주가 오키섬에 파견한 관리가 기록한 것이다. 지난 2005년 무라까와 가문(村川家門)에서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통해 안용복의 신상과 업적을 조사해보면「 죽도고」에서 나오는 인적사항과는 조금 다른점이 있다. 물론 1차때는 평민의 신분으로 갔고 2차는 신분을 변장해서 갔으니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죽도고의 신분을 보면 3품 당사관은 안동지라 쓴 깃발을 들고 11명의 동지들이 들어갔다.

 안동지의 명을 보고 무라카와 가문서에는 안용복이라는 이름을 안변사(アペンシャ)로 통했다. 그러나 원록9년 병자년「 조선주차강일권시각서」는 안용복의 이름을 바르게 쓴 것을 찾을 수 있다. 본 기록에는 안용복 외 5명은 신분을 밝혔으나 6명은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밑줄 친 부분 참조)

 안용복의 복장과 나이를 밝혀놓았는데 나이는 43세이고 삿갓을 쓰고 삿갓의 색은 검은색이고 의복은 목면으로 양반들의 옷이고 요패를 차고 있었다.

 직위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신분이라 기록되어있다. 안용복 雷憲 金可杲 세사람은 오끼섬 책임자에게 조선팔도 지도를 가지고 와서 보여주고 조선 각지방 설명도 했다. 특히 대나무가 많은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죽도(竹島)는 강원도 동래부에 속한 울릉도이고 송도(松島)는 강원도에 속한 우산도이다.라는 주장을 강력히 했다. 그리고 안용복 이외는 4년전에 인슈(伯洲 - 돗토리 현)에 한번 온적이 있고 그 후두 번째 왔으나 죽도(울릉도)에 자주 온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특히 그가 말하기를 죽도(울릉도)는 강원도 동래부에 속한것을 조선 국왕의 어명으로 엄하게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라고 강하게 얘기했다. 모두 13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별곤에는 조선의 8도(朝鮮之八道)지도에 울릉도(죽도) 독도(송도)를 강원도에 속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2010년 10월 1일 1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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