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총스님의 < 마음의 등불 13>
이웃은 나누어 가지는 사이다. 아픔도 기쁨도 나누어 갖는 사이가 이웃사촌이다. 옆집에 산다고해서 다 이웃이 아니다. 옆집에 살면서도 나누어가질 수 없다면 이웃이 아니다.
층간 소음으로 칼을 휘둘러 죽음을 부르는 뉴스를 보았다. 마음을 나눌 수 없다면 이웃이 아니라 벽을 두고 사는 것이다.
지난겨울에 작은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훈훈한 적이 있었다. 전남 화순군에서 땔감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 전달한다는 기사였다. 화순군이 숲 가꾸기를 해서 모은 겨울 난방용 땔감을 관내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생계지원대상자 등 70여 세대에 땔감 100다발씩을 전달한 것이다.
지난겨울에 작은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훈훈한 적이 있었다. 전남 화순군에서 땔감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 전달한다는 기사였다. 화순군이 숲 가꾸기를 해서 모은 겨울 난방용 땔감을 관내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생계지원대상자 등 70여 세대에 땔감 100다발씩을 전달한 것이다.
입지 않는옷을 나누고, 연탄을 나누듯 땔감을 나누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신기한 생각도 들었다. 누가 그런 생각을 냈는지 참 고마웠다. 그런 생각을 낸 사람은 얼마나 가슴이 따뜻할까 싶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나눈다는 생각은 소유에 눈먼 세상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동전을 적선한다고 생각해보자. 측은한 마음으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다가도 번뇌들이 머릿속에 감돌아 그만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처음 생각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즉시 건네면 되는데 오만 가지 생각들이 그 짧은 순간에도 맴도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모습이다.
한적한 산속에서 고행을 하는스님들에게도 이웃은 있다. 아침마다 지저귀는 새들이 이웃이고, 철따라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들이 이웃이다. 한가로이 지나가는뭉게구름이 이웃이고,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실바람이 이웃이다. 아침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해님과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시골길을 밝히는 달님을 보라.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과 치유력은 결코 작지 않다.
산에 사는 스님들도 이웃을 위하며 산다. 줄지어 소풍가는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발밑을 살피며 걷는다. 타는 여름에는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산새나 짐승들이 목을 축이도록 마음을 쓰기도 하고, 먹이가 부족한 겨울이 되면 창가에 곡식을 놓아두기도 한다. 세상 모두가 이웃이기 때문이다.
도심에 사는 사람들도 가만히 돌아보면 사람만 아니라 이웃을 삼아 지낼 만한 생명들이 많다. 길에서 헤매는 고양이 등 그들도 모두 알게 모르게 우리와 함께 인연의 끈으로 연결돼 있다. 당장은 나에게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의 삶이 나의 행복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사실에눈을 뜰 때 나는 참다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멀리 있거나 가까이 살거나 나누면 다 이웃이다. 나눔은 꼭 물질이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마음을 나눌 수도 있다. 주변에 외롭지 싶은 사람이 생각나면 전화를 걸어 따뜻한 말 한 마디 전하는 것도 좋다. 사람들 중에는 이웃보다 못한 친척들도 많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짜증내지 말고 내가 먼저 다가가 웃음과 미소로 대하는 일도 사람의 도리이다.
참다운 행복을 아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타인의 아래에 놓는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작은 것이라도 나눔 속에서 자신의 삶을 더욱 살찌게 한다. 사람과 사람 속에 살아야 하는 인간의 삶에서 나누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산다면 마음의 불구자일 것이다. 나는 혹시 나누지 못하는 불구자는 아닌가. 한번쯤 생각해보며 가는 해를 마무리하자
[2015년 11월 20일 제70호 3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