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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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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단 하루, 한 순간도 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특히 현대사회는 어떻게 남에게 자기자신을 잘 표현하느냐에 따라 성
공과 실패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말 한 마디를 잘해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이 말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 자신의 화를 부르는데 입으로 하는 말만한 것이 없다.

입으로 화를 부르는 것을 설화(舌禍)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남을 험담하는 말을 마구 하면 그 말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허공에 빼곡하게 박혀 있다가 언젠가는 자기 자신에게 비수가 돼 돌아온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스님들은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는 말을 교훈으로 삼아 수행한다. ‘입은 재화(災禍)의 문이니 반드시 엄히 지켜야 하고, 몸은 재앙의 근본이니 응당 함부로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고 처음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될 때 배운다.
 
이 가르침은 평생 승복을 입은 수행자가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한다. 모든 재앙의 근본은 말과 행동에 달려 있다. 말을 잘못하여 화(禍)를 당하고 행동을 잘못하여 그 과보를 받게 되므로 입은 재화(災禍)의 문이요, 몸은 재앙(災殃)의 근본이다.

일상의 사람들 가운데는 악담을 해서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운전을 하다가 여성들이 천천히 간다고 뒤에서 빵빵거리고, 그것도 모자라 바짝 차를 옆에 붙여서 입에 담지못할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이쪽 말을 저쪽으로 꾸미고 옮겨서 친구나 동료를 이간질 시키거나 상사 앞에서는 듣기 좋은 반지르르한 말로 아첨하다가도 뒤에서는 온갖 험담으로 헛된 말을 하는 것도 보기에 참 거북한 말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한시라도 생각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머리는 온통 오만 가지 생각으로 번뇌 망상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런 저런 말도 많아지고, 말이 많아지면 쓸 말이 별로 없어 자연히 생각도 행동도 경망스러워진다.
 
사려 깊지 못하면 들뜨고 뜻을 경솔한데 두기 쉽다. 조선시대 폭군 연산군이 신하들의 입을 막기 위해 신언패(愼言牌)라는 것을 목에 걸게 했다. 그 패에는 다음과 같은 중국 오나라 재상 풍도(馮道)의 시가 쓰여 있었다 한다.

구시화지문 (口是禍之門) 입은 재앙의 문이요,
설시참신도 (舌是斬身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
폐구심장설 (閉口深藏舌) 입을 닫고 혀를 깊숙이 간직한다면
안신처처뢰 (安身處處牢) 몸이 편안하여 어디서나 든든하다.
 
우리는 연일 언론을 통해 세 치 혀로 인한 재앙은 보고 듣는다. 그래서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폭군에게서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을 배울일이다. 입을 엄히 단속하지 않을 수 없고 몸가짐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말은 칼과 도끼 같아서 남을 해치고 자기를 찍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2016422일 제7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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