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봄날 아침 / 꽃들은 다투어 뽐내며 피어나고 / 마을은 이토록 조용하고 평화로운데 / 저 전장戰場의 봄은 / 모래폭풍 세차게 불어대고 / 먹구름 하늘을 가린 채 / 포성과 비명으로 얼룩지고 있으리 // 이름 모를 새들 즐거이 노래하고 / 사람들은 모두 자유롭게 / 제 할 일을 하고 있는데 / 저 이라크의 하늘 아랜 / 새들도 집을 잃고 방황하며 / 무고한 백성들 / 지금도 생사의 기로에 떨고 있으리 <오정방 시인 ‘평화와 전쟁’>
러시아 미사일공격이 집중되는 우크라이나 비시우와 인접한 폴란드 국경도시 프셰미시우의 우크라이나 난민캠프를 떠나는 늦은 오후 그린닥터스 봉사단원들의 마음은 몹시도 무거웠다. 말없이 차창 밖을 무심히 쳐다보다가 푸르고 노란 물결이 가슴속에 활기를 불러왔다. 국경 너머 피 튀는 전쟁에도 아랑곳않고 능청스럽게도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 앞에 설렘과 숙연함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무더운 한여름 새파란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듯 차창 밖 푸른 물결 속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멀리 500㎞나 떨어진 수도 바르샤바로 내달리는 차가 고장으로 멈춰 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걱정 한 올 없이 후다닥 차에서 내려,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푸른 밀밭과 노란 유채 밭 속으로 뛰어들었다. 평화의 세상이 있다면 바로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었을 거라 여길 정도로 보는 이들에게 위로를 줬다. 이 푸르고 노란 평원을 바라보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심정은 어떨까. 가슴 쓰라려왔다.
‘유럽의 빵바구니’라 불릴 만큼 우크라이나는 밀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밀밭이 많다는 거다. 갑작스런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밀밭은 망가졌다. 전차들에 짓밟히고, 포탄에 아수라장이 됐다.
우크라이나 작가 쿠르코프는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빵을 먹으면 피맛이 난다’는 말로 우크라이나 밀밭상황을 묘사했다. ‘밀밭은 폭파된 탱크와 자동차 조각,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땅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러시아 군인들의 피, 그리고 싸우지 않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것을 아는 우크라이나 군인과 민간인들의 피로 범벅이 됐다.’
5월이 깊어지면서 녹음도 짙어간다. 그린닥터스 봉사단원들은 짙푸른 녹음을 쳐다볼 때마다 폴란드 국경지역에서 본 푸른 밀밭과 노란 유채 밭을 생각하며 ‘전쟁과 평화’를 떠올리게 될둣하다.
[2022년 5월 27일 144호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