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01일

임종수의 세상만사

퇴직금 5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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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이 염색공 사촌형은 /10년 퇴직금을 중동취업 브로커에 털리고 나서 / 자살을 했다 /돈 100만 원이면 / 아파 누우신 우리 엄마 병원을 가고 / 스물아홉 노처녀 누나 꽃가말 탄다 /돈 1.000만 원이면 / 내가 10년을 꼬박 벌어야 한다 / 1억 원은 두 번 태어나 발버둥 쳐도 엄두도 나지 않은 / 강 건너 산 너머 무지개이다 / 나의 인생은 일당 4.000원짜리 / 그대의 인생은 얼마 / 우리 사장님은 하룻밤 술값이 100만 원이래는데 / 강아지 하루 식대가 5.000원이래는데 / 3천억을 쥐고 흔든 여장부도 있다는데 / 염색공 사촌형은 120만 원에 자살을 하고 / 열여섯 우리 동생 공장을 가고 / 오오!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사랑 우리의 생명은 / 얼마 얼마? <박노해 시인 ‘얼마짜리지’>

’20여 전 IMF사태 때 회사를 떠났다. 10년 넘게 일했지만, 내손에 쥐어진 퇴직금은 겨우 3천만 원이었던가. 그 얇은 액수 탓에 내 기억마저 가물가물 희미하다. 스스로 자영업이라도 모색하려면 추가로 꽤나 거금을 은행에 기대야 했다. 국가마저 국민들의 삶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걸 처음을 목격한 당시로서는 대출도 쉽지 않았지만,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불확실성을 선택하기도 괴로웠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함만 발견하고, 결국 또 다른 임금 일자리를 찾아 나섰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최근 들어 30, 40년의 ‘회사생활’을 마무리하는 친구들이 손에 쥐는 퇴직금이라고는 고작 1억 남짓이란다. 월급 대신 매달 받게 되는 국민연금이래야 푼돈 수준일 테고.

퇴직 이후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으로 생활하는 이들의 사정을 듣노라면 남의 나라 이야기 같기도 하고, 그저 부럽기만 하다. 여전히 ‘일에 굶주린’ 젊은 60대가 얄팍한 퇴직금을 손에 쥐고 인생 2모작을 설계해보려 하지만, 세상의 잔인함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일요일 아침부터 1990년생 젊은이가 6년도 채 일하지 않고, 퇴사하면서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는 뉴스에 노동자 시인 박노해와 그의 시들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백 번 태어나 발버둥 쳐도 엄두도 나지 않은 / 강 건너 산 너머 무지개’ 같은 거액이다. 내 인생은 얼마짜리지?

[2021930일 제1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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