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1년 12월 05일

인터뷰

“어떤 자리든 지역사회 발전위해 뛸 것”

캡처.JPG

“코로나19로 인해 모임과 활동의 제약이 있지만 올 초에는 보육원에 ‘자장자장 힘을 내요 1004마스크 전달식’을 가졌고, 최근에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오염수 중단’ 촉구 캠페인을 했습니다” 몸에 배어있는 부지런함과 특유의 추진력으로 부산지역 여성리더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는 권영숙(61) 전 부산시 북구의회 기획총무위원장의 근황이다.

한국자유총연맹 부산시지부 초대 여성회장자문위원회자문위원장인 권 전 의원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바쁘게 살면서도 집안 건사, 회사 운영, 단체활동 등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아냈다. 지역의 작은 단체에서부터 봉사를 하다 보니 소속단체와 직함만도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마을 부녀회 자치위원장, 북구 덕천2동 자치위원장을 거치고, 적십자봉사회 회원으로 수년간 활동해오면서 지역의 구석구석을 챙겼다.

저소득층에 도시락 반찬배달, 금곡 공창종합사회복지관 급식봉사 외에도, 덕천동 적십자회 회원으로 거의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월 2회 무료급식 봉사에도 참여했다. 그는 이 가운데 “덕천2동 자치위원장 시절에 ‘홀로 어르신 사업’만들어 관내 60여 명의 어르신들께 반찬 제공, 물품 기부와 어버이날 행사, 매달 기부를 실천한 것”을 특히 보람 있었던 있는 일로 꼽았다.

권 전 의원은 또 뛰어난 여성인재들의 모임으로 알려져 있는 여성리더1040의 총동문회장을 맡았을 때도 조직을 단단히 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권 전 의원의 가장 큰 뿌리이자 토대가 되는 단체는 2021년 현재 16개 구·군 지회로 편성돼 있는 보수단체, 한국자유총연맹이다. 부산시지부 회원에서부터 출발해 15년 활동하는 동안 그 능력을 인정받아 전국시도여성협의회 회장이 되었고, 2013년에는 대통령표창까지 받았다.

 

작은 단체서부터 시작한 봉사활동 지속
한번 맺은 인연은 평생 소중히 여기며 살아

 

한국자유총연맹에서 해마다 해 온 행사들은 6·25 전쟁기념행사. 그린부산만들기 나무심기, 어르신 무료급식봉사, 아동성폭력예방 및 저출산 극복 캠페인등 많지만 이 가운데 그의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학교주변에서 범죄예방과 선도활동을 했던 ‘어머니포순이봉사단’이다. 구의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제7대 북구의회 총무기획 위원장으로 의정활동을 할때부터 밤 12시에 자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는 그는 ‘민원’이라면 아무리 밤늦게 걸려오는 전화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지역민들이 “누구한테 얘기해도 안 되던 게 권 의원 통하면 일사천리로 해결이 된다”면서 “‘똑순이 해결사’, ‘북구의 맏며느리’라는 별명을 지어 주셨다”고 한다. 중요한 민원들은 임기 내거의 해결을 해낼 정도로 당시 의정활동을 억척스럽고 끈기있게했다. 그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회사는 지역에서 19년의 업력을 쌓으며 승승장구했다. 지금도 하루하루 스케줄이 빼곡한 권 전 의원의 일가정양립의 비결은 ‘부지런함’이다.

7남매 중 장남과 결혼한 맏며느리로, 6명 시동생의 학업과 결혼을 끝까지 뒷바라지한 책임감의 소유자이며, 홀시아버지를 26년간 모신 ‘효부상’의 주인공이다. “체력은 타고난 것 같다”는 권전 의원은 늘 에너지가 넘치고 “한 번 맺은 인연은 평생 소중히 여기며 산다”는 의리녀이기도 하다. 선약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물론, 약속시간은 철저히 지키다 못해 보통 30분 전에 나가 있을 정도로 일과 사람과의 관계가 철두철미하다.

서예 고수이기도 한 그는, ‘눈덮인 들판을 걸을 때(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함부로 걷지 마라(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은(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라는 문구를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의 이정표가 될만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지역에 아직 봉사할 일이 많다”는 권 전 의원은 “어떤 자리든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뛰어보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정은 기자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