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01일

레저/여행

향신료처럼 다채로운 인도인의 삶


_다바 왈라_ 가정에서 직장까지 도시락 배달.JPG _빅토리아 역_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19세기에 빅토리아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JPG


뭄바이, 인도의 경제 수도


‘미국에 헐리우드가 있다면 인도에는 볼리우드가 있다’는 말이 있다. 볼리우드는 인도 뭄바이의 옛지명인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이다. 인기있는 인도 영화 산업을 일컫는 이름이다.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을 당시에는 영어식으로 봄베이라고 불렸다가 1955년에 뭄바이라는 인도식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수도인 델리가 문화, 정치의 중심이라면 뭄바이는 인도 최대의 경제도시이다.


헐리우드 못지않게 영화 산업이 발달한 것도 이렇게 경제적인 자본이 풍부해서 가능했다. 하지만 인구가 많은 만큼 빈부 격차도 심하다. 아라비아 해 연안에 위치한 뭄바이는 인도 최대의 국제 무역항이다.


뭄바이를 상징하는 인도문은 1911년에 영국왕이 인도를 방문한 기념으로 세웠다.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인도는 신비한 향료와 막대한 자원, 수많은 노동력을 가진 거대한 시장이었다. 그런 인도로 통하는 관문이 바로 뭄바이였다.


미국에 헐리우드, 인도엔 볼리우드


현재 인도문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돼서 뭄바이 시민들이 자주 찾는다. 관광객도 한번은 꼭 들렀다 가는 장소다. 뭄바이 택시는 까만 몸체에 노란 지붕을 하고 있다. 교통신호를 지키는 차량은 보기 쉽지않다.


승객을 많이 태울 수 있는 이층버스는 가만히 보면 버스 두 대를 나란히 이어 붙인 형상이다. 구형 버스라 좀 낡긴 했어도 뭄바이의 명물이다. 이층 버스에서 택시, 달구지까지 바퀴 달린 모든 것이 뭄바이 시내를 달린다.


거리의 사람들 중에는 부랑인도 있지만, 더워서 집 밖으로 나온 경우도 많다. 우리 눈에는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지만, 뭄바이 사람들에겐 자연스럽다. 떠돌이 개들까지 태평하게 누워서 잠을 잔다. 말린 생선을 손질하는 모습도 보인다.


일자리를 찾아서 몰려든 노동자가 많은 만큼 뭄바이의 빈부격차가 큰 것도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마을 한가운데는 힌두교 사원도 있다. 바닷가 마을답게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도 빠질 수 없다. 이들의 생활은 분명 누추했으나 모두들 진지한 자세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간디 비폭력 운동의 산실


간디는 인도인들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다. 뭄바이에 있는 간디 기념관은 마하트마 간디가 1917년부터 1934년까지 운동본부로 사용하던 집이다. 한쪽에는 간디의 생애를 인형으로 재현한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간디는 비폭력 운동의 기반을 확립했다. 간디가 민중과 함께 하면서 실 짜는 법을 배운 곳도, 병들어 처음으로 양젖을 마신 곳도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간디는 카스트 제도의 비인간적인 측면도 반대했는데, 결국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그 이듬해 극우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법적으로 철폐됐지만, 사회에서는 지금도 존재한다. 뭄바이에는 ‘도비 가트’라고 하는 인도에서 가장 큰 빨래터가 있다. ‘도비'란 빨래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인도에서는 빨래를 하는사람을 신분이 낮은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인도식 계급에 의하면 최하층민 이른바 불가촉천민을 일컫는데, 남자들의 빨래터인 '도비 가트'의 진풍경을 보면, 인도라는 사회가 가진 문화적인 특징을 알 수 있다. 비누칠만 하는 사람, 헹구기만 하는 사람, 널기만 하는 사람 등 저마다 맡은 역할이 다르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이지만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정신없이 복잡한 것 같은 인도가 어떻게 규칙적으로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예라 할수 있다.


14.JPG 뭄바이 _도비가트_ 가장 큰 빨래터. 도비는 빨래하는 사람들을 일컷는 말..JPG


빅토리아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빅토리아 역은 19세기에 빅토리아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아주 화려하며 인도와 유럽 양식이 혼합돼 있다.


기차역 안은 많은 인도인들이 오고 가는 가장 분주한 곳이다. 다른 나라도 그렇듯이 산업이 발달한 곳에는 도시 영세민도 모이기 마련이다. 기차역 주변으로는 갖가지 물건을 갖고 나와서 파는 행상이 많다.


인구가 많으니 직업의 종류도 많아서 오렌지 즙이나 사탕수수의 즙을 짜서 파는 상인을 비롯해서 유선 전화를 빌려주는 곳도 있고, 귓속을 청소해 주는 사람, 사진 모델이 되고 돈을 받는 사람도 있다.


각 가정에서 손수 만든 도시락을 그 사람의 직장까지 배달해 주는 '다바 왈라'라는 도시락 배달부도 있다. 도시락 배달은 인도의 다른 도시보다도 뭄바이에서 성행하는 직업이다.인도는 힌두교 전통상 집에서 만든 요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배달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


1800년대 말부터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서 그때부터 도시락 배달 서비스가 생겼다고 한다.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을 자세히 보니 똑같이 생긴 도시락이 하나도 없다. 그 많은도시락을 제 시간에 맞춰 집과 회사까지 정확하게 배달하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코끼리섬엔
힌두교 사원 찾는 관광객 북적


오후가 되면 인도문 주변을 찾는 관광객이 더 많아지는데, 이 앞에서 코끼리 섬으로 가는 배가 출발한다. 섬 안에 오래된 힌두교 사원이 있어서 관광객 뿐 아니라 힌두교 신도들도 많이 찾는다.


배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코끼리 섬은 꽤 먼 거리지만 가다가 인도의 고기잡이 어선도 구경하고, 웬만한 빌딩 한 채 크기 만한 화물선도 구경하면서 달리면 그리 지루하진 않다. 코끼리가 많이 사는 섬은 아니고 섬이 코끼리 모양도 아니다. 섬에 코끼리 모양의 조각상이 있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부둣가에서 섬 안쪽까지는 관광용 기관차가 운행된다. 기차를 타면 5분 정도 되는 거리여서 걸어가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섬 안에는 주민들도 실제로 살고 있다. 코끼리 섬에는 6~8세기에 조성된 힌두교 사원이 있다.


바위산에 일부러 굴을 파고 그 안에 시바 신을 모신 석굴 사원이다. 뭄바이를 벗어나 타지마할을 찾아가는 길에는 인도 특유의 삼륜차인 ‘릭샤’가 보이고 낙타도 중요한 운송 수단이다. 한 휴게소에는 낙타뼈로 만든 기념품 가게도 볼 수 있었다. 색깔 있는 돌을 잘게 갈아서 모 자이크처럼 만드는 대리석 공방도 있다.


인도의 전통 공예 방식으로 타지마할을 만들 때도 이 공법이 쓰였다. 일일이 재래식 방식으로 손으로 작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세밀하고 화려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타지마할에도 대리석을 깎아서 만드는 공예 기술이 건물 전체에 쓰였다고 한다.


닷이 황제가 왕비의 죽음을 애통해 하면서 지었다고 하니, 그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만하다. 운 좋게도 상류층의 결혼식도 보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예식을 하기 전에 우선사돈끼리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는 신부가 천천히 등장하는데 우리처럼 한 번에 쭉 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다가 쉬고, 오다가 쉬고, 아주 뜸을 들인다.


의상이 아주 화려한데 원래 인도의 전통 결혼식에서 신부는 가능한 모든 종류의 장신구로 치장한다고 한다. 손에도 장갑을 낀 것처럼 요란하게 문신을 한다. 신랑 신부가 만난 다음에는 사돈끼리도 한 식구처럼 어울려서 춤을 춘다.


다채로운 인도의 향신료처럼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인도 사람들. 그래서 세계의 많은 여행자들이 인도를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나라이면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나라로 꼽는다.

도용복.jpg
 











[2018824일 제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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