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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면 추억되고 돌아서면 그리운 힐링 보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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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 언덕에 보물섬이 있다. 낮은 담장, 익숙한 슬레이트 지붕아래 두어 평 아기자기한 공간에는 시간마다 추억이 머물고, 드르륵 오랜 미닫이 창 밖으로 흘러내리는 비마저 시가 되는 공간. 쥔장이 가둬놓은 물고기가 마음껏 바다를 유영하는 벽장엔 포구밖 뱃고동도 머물다 간다.

박영의 보물섬. 해운대 달맞이길을 지나 송정으로 가기 전 교각아래로 유턴해 내리막길로 달리다 오른쪽으로 빠지는 청사포가는 길에 파란지붕의 보물섬이 있다. 옛 철도가 다니던 큰길로 곧장 달리면 해변이 나오므로 교각아래서 150여미터 지나 반드시 오른쪽 샛길로 들어서야 한다. 1970~80년대 옛슬레이트가옥 원형을 살려 재생한 ‘보물섬’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퓨전 문화공간이다.

주인 박영 대표(사진위)가 그날 그날 영감에 따라 레시피를 내고 메뉴를 창작개발하여 제공하는 이색맛집이면서, 철지난 보세옷과 이역만리 물건너온 보따리 옷까지 단돈 몇 천원에서 몇 만원에 구제옷 골라보는 재미도 쏠쏠한 편집샵도있다. 카페이자 음식점, 주점이자 모임공간, 그야말로 복합문화공간이다. 본 채를 지나 아래채 보세편집샵 옆에는 청사포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정원과 마당이 이어지고 몇 그루 보기좋게 자란 나무엔 그네가 정겨운 곳.

요즘같은 계절엔 야외 바비큐 파티와 작은 음악회도 종종 열려 모처럼 생기가 넘친다. 맛, 멋, 예술이 함께하는 이곳은 지난 초여름 본격 오픈이후 알음알음 마니아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팍팍한 삶속에서 추억을 잃어가고 있는 도시인들에겐 향수의 생산지요, 쉼터이자 힐링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연말엔 골목 맞은 편 빈 집도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공간을 확장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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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 대표. 그는 원래 패브릭 아티스트다. 패션스타일리스트요, 행위예술가이자 창작예술가다. 박영 대표의 손을 거치면 무엇이든 새롭게 탄생한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삶을 살아온 박영 대표는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또 새로운 완성을 위해 떠나는 집시같은 삶의 여정이었다.

이곳 청사포에 안착하기 전, 거제도에서 3~4년간 머물며 공간재생과 이색문화운동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장사가 안돼 폐업상태에 있던 허름한 호텔에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줄잇고 죽어있던 공간이 생기를 되찾자, 부동산 가치가 몇 배로 뛰어올랐다. 공간이 살아나자 욕심이 난 주인들의 이기심은 또 다시 이방인을 밀어내기에 이르렀고, 이즈음 발길을 옮겨 둥지를 튼 곳이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다.

이곳 역시 처음엔 옛 시골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다스의 손, 박영의 재능을 아는 땅 주인들의 요청에 의해 박영은 5년 임대계약을 맺고 이곳을 손수 리모델링 했다. 기본 틀은 두고 뜯고 고치고 그리고 칠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박영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게 아기자기한 지금의 문화공간이 탄생했다.

박영 대표는 “나는 늘 하얀 도화지를 완성해가는 삶이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내 손이 다 찢어져도 즐거운 공간을 만들어가고 남을 즐겁게 해줄 수 있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것이 나의 행복이기도하다”고 말한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4세에 경기도로 이사와 줄곧 살았지만 일 때문에 이곳저곳 타지 생활을 하다가 부산에 온지는 근 20년 됐네요. 최근에 다시 청사포로 들어왔으니 3~4년만에 컴백한 셈이죠. 아마도 인생여정 가운데 부산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싶네요. 그만큼 부산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매력적이거든요.”


옛 슬레이트 집 원형살려 재생 아기자기한 이색문화공간
정원 뜨락엔 청사포 바다가 한 눈에...맛과 멋 정취 물씬
메뉴와 레시피는 일신우일신, 음식 주점 등 보세옷가게도


박영 대표는 20대시절 패션스타일화를 그리며 패션분야에서 일을 하다가 공간에 대한 관심을 갖게되면서 공간연출과 작업에 한동안 빠져들었다. 공간연출을 하면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 부분이 ‘창문’이었다는 박 대표는 이 무렵 패브릭에 관심을 갖게됐다. 20여년 전만 해도 패브릭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디자이너가 없었던 시절이라, 패브릭을 소재로 공간연출 곳곳에 활용하는 시도를 처음으로 했다.

가구매장 각종 인테리어 매장 등 패브릭을 소재로 파티션 공간 연출 등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한 패브릭은 열풍을 일으켰다. 뛰어난 색감과 디자인 감각 공간연출 감각과 함께 직접 디자인 제작한 박영의 패브릭 아트는 대히트였다. 여기저기에서 주문이 쇄도했고, 유명 인기연예인 안정환, 최수지 등 기업체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에서 박영 대표를 찾았고, 그의 손을 거쳐 꾸며진 유명인의 공간도 많았다.

대구 금성섬유 디자인 실장으로 일하던 시절 중국의 한 기업체 오너는 즉석에서 원단을 스케치하고 표현하는 색조합의 모습과 쇼윈도우 디스플레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박영 대표를 사고싶다고 제의할 정도로 그의 감각은 업계가 인정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후 섬유산업의 쇠퇴와 주상복합 건축문화로 주거문화가 바뀌고 기능성을 선호하게 되면서 패브릭의 자리는 블라인드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패브릭 소재는 부분 커튼 정도로만 남고 겨우 명맥만 유지해, 소비도 점점 감소추세로 접어들면서 재미를 잃게 됐다고. “일산의 허허벌판에 프로방스가 생겼는데 처음엔 조그만 카페에서 캔들을 팔던 곳이었죠. 하나의 점에 불과했던 공간에서 시작돼 불과 15년만에 엄청난 문화공간으로 대 탄생한 거죠. 누군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고 외치지 않으면 누가 내 꿈을 알수 있을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표현하고 이렇게 소박하지만 시작하는 일이었어요.” 올초 길 건너 모퉁이 집도 고쳐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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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주변 사람들은 걱정이 컸다.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출발을 했지만 이런 저런 우려에도 ‘까이꺼’ 걱정없다는 박영 대표. “아직은 가슴이 뛰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이것이 내자산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설렘이 가득하다. 수십여일 동안 깨고 부수고 저녁엔 또 지친 몸을 이끌고 장사를 하면서 억척같이 준비하며 청사포의 꿈을 열었던 지난 여름.

벌어서 보태고 일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삶인지 수도인지 예술인지스스로도 분간할 수 없는 일상은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행복하다는 박영 대표. 이곳 청사포 언덕 파란지붕, 박영의 보물섬은 화려한 네온사인은 없어도 오로지 나를 알리는 색채와 촛불 하나뿐, 이것만으로도 족하다는 박대표.

“촛불 밝히듯 언제나 불을 켜고 있으니 누구나 찾아와 머물다 갈 수 있는 편안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번잡한 도시인들에게는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힐링을 하고가는 부담없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유순희 기자

[202065일 제1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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