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방송에서 “그들이 산사로 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일탈의 유일한 출구로, 고뇌와 현실도피수단으로 산속 암자 생활을 선택하는 거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예비 승려들의 교육이 참으로 힘들고 철저했다.
무려 5시간에 걸친 행자고시를 치러야 하고 마지막 관문인 삼천배 철야정진을 해야 했다. 또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다는 연비의식(팔에 쑥뜸)도 치러야했다. 한 예비스승의 말. “여자로서의 자존심인 머리를 자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안쓰러웠다.
승려를 의미하는 가사(법복)를 받는 의식거행이 신기하고 그 옷의 무게를 느낀다고 했다. 원효대사의 훌륭함을 되새겨본다.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도중 묘지 옆에서 잠을 자는데 목이 말라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라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 당나라로 유학 갈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되돌아갔다는 일화가 있으며 여러 종파로 나누어진 불교를 화쟁(和爭)으로 다스렸고 역사상 불교사상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며 사찰도 여럿 건립했다고 한다.
그리고 성철스님의 평소하신 말씀, 입적과 다비식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우리 범인은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훌륭한 분들을 다시 한 번 존경하게 된다.
예비승려의 한 어머니의 절규가 내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무릎이 닳도록 빌고 빌어서 얻은 아들 마지막으로 꼭 안아주고 싶어요. 사랑한다고, 엄마가 많이 사랑했다고, 껴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훌륭한 스님 되시라고 일해 스님께 3배를 드리고 싶어요” 아들은 차마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 보지 못하고 외면을 했다. “내가 원해서 출가했는데 왜 우는지, 속가에서 부르던 이름 지수야 하시는데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그 어떤 조건을 내밀어도 부모는 못 버린다. 내게 있어 부모는 곧 부처다” 훗날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부모님께 올립니다. 부끄럼 없는 모습으로 한발한발 나아가겠습니다” 한 행자의말.
“오감이 다 인연이요 헤어짐도 인연, 원해서 택한 길인데 문득문득 못난 생각으로 고뇌의 고통을 겪는다. 이제 시작이구나.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견딜 수 있을까” 명예도 내려놓고 재물도 내려놓고 사랑했던 여자도 내려놓고 욕망과 어리석음을 내려놓는 일이 쉽지가 않다”
텔레비전 방송이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나는 세속에만 젖어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백정자 (사상구 모라로 주공 1단지)
[2016년 5월 25일 제76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