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1일

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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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雨後竹筍. 비라도 한 차례 뿌리고 난 봄날 대숲에는 뾰족뾰족 죽순이 고개를 내밉니다. 하루가 다르게 땅을 박차고 솟아나는 죽순은 한 달이 지나면 하늘 끝까지라도 오를 기세로 높이 솟구칩니다. 이렇게 빨리 자라는 식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마치 막 한 소식을 꿰뚫은 대장부가 산문을 박차고 기분 좋은 걸음으로 탕탕하게 만행을 떠나는 듯합니다. 학문을 성취한 공부인이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는 형국입니다. 이런 대나무는 그 성품 그대로 인고忍苦의 세월을 기록하지도 않습니다. 아픈 흔적들을 모두 비운 도인道人인 양 속은 텅텅 비웠으되 겉은 단단하고 강인합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곧은 사람을 두고 '성질이 대쪽 같다'고 합니다. 곧게 자라는 대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그대로 지니기 때문에 소나무와 함께 송죽松竹으로 불리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져 왔습니다.

대나무는 휘지는 않지만 바람이 불면 시시비비를 초월하기라도 하듯 그저 고개를 숙입니다. 고개 한 번 숙인다고 세상 다 산 것처럼 울지도 않습니다. 모든 일일랑 모두 포용하는 대장부의 마음이라 설령 상대가 소인배일지라도 그저 고개를 숙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본성을 잃지 않고 다시 당당하고 꿋꿋하게 섭니다.

그 성품이 본래 곧으니 몸과 마음을 곧게 세워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굳센 기상으로 살아갑니다. 그 기상이 씩씩하니 씩씩한 것으로서 믿음을 이루어 나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기상을 보고 의리를 지키고 언약이 변치 않으리라 여깁니다.

대나무의 마디마디가 비어 있는 것은 어디에도 유혹 받지 않는 텅 빈 무소유입니다. 세월의 나이테마저 부질없는 일임을 알아 연연하지 않으며 항상 비워둠으로 그 속에 허공을 담습니다. 비우지 않고는 담을 수 없으니 항상 비워두는 것입니다. 비우고는 또 마디마디를 만들어 비움을 순간마다 돌이켜 새기며 각찰覺察합니다.

나의 비움이 잘 되었나 살피고 또 살피며 비우고 비운 마디를 연이어 만들어 갑니다. 마디는 굳세어 굳셈으로 더욱 굳세게 뜻을 세웁니다. 날이 가고 해가 가도 뜻이 굳세니 원하는 바는 반드시 성취하고 말 것입니다. 부지런히 참고 견디며 땀 흘릴 뿐 유혹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의 뿌리가 튼튼한 것은 대나무의 큰 덕입니다. 근본이 튼튼하니 뽑히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을 지탱하는 근본이 튼튼하니 만사가 형통합니다. 육신의 건강을 잃으면 마음이 피폐해지고, 마음이 건강을 잃으면 곧 육신도 쓰러지고 맙니다. 집안의 근본인 가장이 흔들리면 집안이 고통을 받습니다. 얽히고설킨 뿌리는 대지에 단단히 박혀서 지진이 와도 대숲에만 들어가면 살아남습니다.

이런 대나무가 몇 십 년을 기다려 때가 되면 꽃을 피웁니다. 그 귀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땅에 뿌리고 나면 스스로 죽음을 택해 세상에 무상無常한 도리를 보여줍니다. 한 뿌리를 의지하던 모든 대나무가 일시에 죽음으로 다시 태어날 생명에게 자리를 비워줍니다. 함께 부비고 흔들리며 살았던 모든 흔적들을 남김없이 모두 거두고 맙니다.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고집멸도苦集滅道와 십이인연十二因緣의 가르침.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내립니다. 그 자리는 귀하거나 천한 것도 없습니다. 평등한 침묵입니다.

 [20231271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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