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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삼천배

혜총스님.jpg

 1953, 열한 살의 나이에 통도사에 찾아가니 자운 큰스님이 삼천 번 절(삼천배)을 하라고 시키셨다. 그때 나는 스님께 여쭈었다.   

죄도 없는데 왜 절을 해야 합니까?”

   그냥 하면 된다. 크면 다 알게 된다.”  

……"

 왜 절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밤을 새워 삼천 번 절을 하고 그 다음날 아침 걷지도 못하고 기어서 나왔다. 그리고 자운스님이 계를 주셨다. 그렇게 스님이 되었다. 그때부터 사십 년 동안 자운스님을 시봉했다. 왜 절을 해야 하는지는 나의 첫 화두였다. 그 화두는 청년이 다 되어 알게 됐다.

 개구쟁이 시절의 어릴 때를 생각해보았다. 물고기나 개구리, 뱀을 잡아서 가지고 놀다가 그야말로 처참하게 죽이기도 했다. 잠자리 꼬리를 자르고 거기다가 풀대를 길게 꽂아서 날려 보내면서 손뼉을 치며 좋아하기도 했다. 여느 시골 아이들처럼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저지른 업보가 얼마나 큰지 그 천둥벌거숭이 시절에 어찌 알았겠는가.

  그때를 생각하면 삼천배를 참 잘했구나 싶다. 부처님 법을 참 잘 만났구나 싶다. 부처님의 덕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아무런 죄의식이나 거리낌 없이 개미를 밟아 죽이고 꽃을 꺾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마음도 아프게 하면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 아닌가.

 길바닥에 패대기쳐진 개구리와 뱀의 입장이 되어 보라. 죽어가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며 나를 원망했겠나? 몸뚱이가 반쯤 잘려나가는 고통 속에서 창자를 후벼 파고드는 풀대를 끼우는 나를 잠자리는 또 얼마나 원망했을까? 우리는 이렇게 알게 모르게 짓는 죄업 속에 살아간다. 수억 겁 전생부터 지어온 그 죄업이 허공을 덮고도 남을 것인데 단 하룻밤의 삼천배로 다 소멸이 되겠는가? 삼천배가 아니라 평생을 오체투지(五體投地)하며 이마를 땅에 부딪고 참회한다고 한들 지울 수 없다.

 그러니 삼천배를 하고 스님이 되어 무엇이 죄인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부처님의 큰 은혜를 입은 것이다. 거기다가 그 죄업을 씻을 수 있는 참회의 도리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소승은 오늘날까지 스스로 알고도 모르고도 지은 죄업에 대해 매일 백팔배로 참회하고 산다.

 인연의 도리로 바라보면 우리가 살면서 고통을 받는 일들은 전생에 지은 업이 많다는 증거이다. 그러니 전생에 지은 업을 씻을 수만 있다면 고통도 사라진다. 낱낱이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면 쌓인 눈이 봄볕에 녹듯이 업장도 서서히 녹는다. 지성껏 참회하면 세상이 모두 나와 한 몸임을 깨닫게 되고, 세상을 남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지혜의 눈이 열린다.        

 나의 삶이 왜 이런가 한탄만 하지 말고 참회하기를 권하니 누구나 한번 해보라. 참회를 하면 과거의 죄업도 녹을 뿐 아니라 또 다시 반복해서 그런 업을 짓지 않게 되니 행복의 첫걸음이다.   

                                                                                               [2022년 2월 25일 14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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