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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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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끊긴 겨울날, 마당의 나무를 바라보며 또 한분의 스승을 뵙는다. 나무. 나무를 바라보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이다. 끝없이 나무를 바라보면 나중에는 내가 나무를 바라보는지 나무가 나를 바라보는지 모를 경지에 이른다. 그렇게 바라보다보면 처음에는 나무의 형체만 보이다가 서서히 나무의 피부가 보인다. 핏줄과 살점이 보이고, 나무가 살아온 세월이 보인다. 그렇게 계속 지긋이 바라보다보면 숨소리가 들린다. 나무의 아픔이 보이고, 고뇌까지도 모두 관상(觀想)할 수 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나, 보기 싫은 사람이나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문득 세상에는 그렇게 미워할 사람도, 원망할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하나의 세계를 이룩하려면, 서로를 터놓으려면 서로를 거룩하게 관상할 수 있어야 한다. 관상한다는 것은 보는 것이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미워할 때는 볼 수 없었던 의미들이 하나, 둘 나타나면서 그를 이해하게 되고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깊이깊이 들어가다 보면 동체대비(同體大悲)가 된다. 한 몸이 된다.

나무는 무엇보다 인욕(忍辱)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마구 흔들어대는 세찬 비바람과 뜨거운 태양, 눈보라가 치는 매서운 겨울밤도 상관없이 고요히 숨을 쉬며 묵묵히 참고 견디는 나무. 나무는 그 인욕을 통해 우리들에게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준다. 맛있는 열매도 선물한다. 모든 물상들이 계절의 흐름에 따라 나무의 주위를 오가며 변화하지만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서있다. 마치 지극한 마음으로 인욕 수행에 나선 청정한 구도자의 한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 듯하다. 비록 겉모습은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더욱 푸르러 바르고 올곧은 정신으로 뿌리는 더욱 단단하게 대지에 박혀서 안으로, 안으로 무르익어간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고, 내일은 더욱 좋은 새날을 맞는 인과의 진실상을 구현하고자 우주법계의 사자처럼 묵묵히 허공을 바라볼 뿐이다. 무엇이 떠나가고 무엇이 변하는지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희로애락에 흔들림 없는 그 모습이 바로 부처님이요, 하느님이다. 사람들은 보기 좋아라고 가지를 치고 철사로 동여매고 겨울이면 반짝이는 불빛을 보려고 전깃줄을 손발에 동여매면서까지 괴롭히지만 그는 그저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듯 자비롭게 바라볼 뿐이다.

정녕 나무가 얼마나 아파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나무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은 나의 입장이 부끄럽다. 한때 나는 내 곁에 두려는 무지한 사랑에 빠져 나무와 꽃을 함부로 자르고 꺾고 옮기기도 했다. 그 탓에 아픔과 목마름을 견디다 서서히 죽어간 나무와 꽃들을 생각하며 나의 지난 잘못들을 참회한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는 이 땅의 생명이 흔들림을 본다.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보살처럼 낙엽을 다 떨어뜨린 나무가 겨울바람에 흔들릴 때면 나도 나무가 되어 세상의 아픔들을 바라본다. 훠어이- 훠어이- 바람에 나무가 운다.

 

                                                                                               [2022년 1월 21일 140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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