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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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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역사를 보면 왕이나 태자, 왕비로 살다가 그 지위를 다 버리고 출가해서 스님이 된 사례가 많다. 신라시대에 법흥왕과 그 왕비, 진흥왕과 진흥왕의 왕비도 출가했다. 특히 후세에 큰 깨달음을 남긴 중국 청나라의 순치황제는 어지러운 중국 천하를 통일한 후에 한 편의 출가시를 남기고 문득 출가했는데 출가하면서 남긴 10수의 시는 워낙 유명해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한 수를 소개한다.

 

아손자유아손복(兒孫自有兒孫福)

불위아손작마우(不爲兒孫作馬牛)

고래다소영웅한(古來多少英雄漢)

남북동서와토니(南北東西臥土泥)

     자손들은 제 스스로 제 살 복을 타고났으니

자손을 위한다고 마소 노릇 그만 하소

수천 년 역사 위에 많고 적은 영웅들이

  동서남북 사방에 한줌 흙으로 누워 있네.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에게 물어본다. 자식들을 위해 나의 인생을 얼마나 쓰시느냐고 묻는다면 거의 모든 부모들은 90%에서 거의 99%까지 쓴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뉴스를 보면 자식을 내다버리거나 죽이기까지 하는 인면수심의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부모들은 자식이 잘 되라고 인생의 전부를 바치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녀들을 위한 마음이 지극하고 지극하다.

여기서 잠깐 자손들은 제 스스로 제 살 복을 타고났으니, 자손을 위한다고 말이나 소 노릇 그만 하소.” 라고 한 순치황제의 시를 통해 우리 부모들도 자신의 인생을 한번 돌아보자는 이야기다.

무릇 사람은 잘 살든 못 살든 다 각자 자기 복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나는데 뭘 그렇게 자식을 위해서 평생을 말 노릇, 소 노릇을 하느냐는 말이다. 자기 자손들을 위해서 말 노릇이나 소 노릇을 그만 하라는 것이다, 수천 년 역사 위에 많고 적은 영웅들도 다 동서남북 사방에 한줌 흙으로 누워 있는데.

보통 사람들이 스님이 되는 것도 9대에 착한 일을 쌓아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황제라는 최고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지위와 복록마저 한 순간의 연기임을 깨닫고 출가한 순치황제가 항상 희로애락과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우리를 위해 남긴 자비로운 말씀이다.

세속에 사는 이상 명예나 재산을 소유하기 위한 노력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궁극적인 인생의 이상향이 무엇인지도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 그 조화를 잘 이루고 중도적으로 살아야 세련된 삶, 멋스런 삶을 살 수 있다.

너무 세속적인 삶에 빠져 집착하면서 살면 끝도 좋지 않지만 중간도 좋지 않다. 잘 먹고 잘 입는 겉모습에만 빠져 살면 삶이 추해 보인다. 가끔은 자식도 놓아버리고,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살피면서 또 나의 삶도 돌아보면서 양면을 조화롭게 살아야 중간도 끝도 편안하다.

 [2021년 11월 19일 138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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