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4월 26일

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돌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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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를 청풍납자(淸風衲子)라 한다. 말 그대로 시원한 바람에 잿빛 납의(衲衣)를 걸치고 걸어가는 사람이다.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걸림 없이 허허로운 사람. 이런 스님은 시원한 산바람이다. 소나기가 지나간 여름날의 드높은 하늘이다.

가을날 추수를 끝낸 농부들이 들판 너머로 바라다보는 깊고 깊은 푸른 하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온갖 번뇌를 안고 마음이 답답할 때 스님을 찾는다.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바람과 하늘같은 존재가 수행자의 상징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칠십 평생을 그 수행자로 살아왔으면서도 나는 지금도 ‘푸른 하늘처럼 가슴이 시원해지는 스님인가? 땀 흘리며 산등성이에서 맞이하는 시원한 산바람 같은 스님인가?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보름달과 같은 스님인가? 길 잃은 나그네에게 샛별과 같은 스님인가?’ 돌이켜본다.

세속의 사람들이 이런 스님을 찾는 이유는 자신들이 가지 못하는 고결함, 순수함, 청정함, 지혜로움, 허허로움, 한없는 다정함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스님이란 이런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스님에게서 이 고결과 순수와 청정과 지혜, 허허로움, 다정의 이미지가 깨어진다면 어여쁜 중생에게 시원한 바람도, 푸르른 창공도, 새벽녘 샛별도, 어둠을 밝히는 밝은 보름달도 사라지는 것이다.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으로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말이 있다. 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동안 하늘이 밝아지는 자연 현상이다. 죽기 전에 잠시 정신이 맑아질 때를 비유하기도 한다. 절에서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이켜 반성하면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눈앞에 보이는 물질현상을 쫓아 잠시도 사유할 틈을 갖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말이 회광 반조, 성찰이 아닌가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는 일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열쇠이다. 돌아보지 않고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돌아보지 않고 벗어났다면 그 순간은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빠졌음을 알아야 한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택하는 술이든 마약이든 맛난 음식이든 흥청망청 소비하는 수단도 진정한 고통의 해방이 되지 못한다.

활 속에서 좌절하고, 원망하고, 남과 비교하고, 시기질투하며 번민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그 원인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고 있다. 자신 외 그 어떤다른 곳에서도 찾아서는 안 된다. 오직 자신에게서 고통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어머니라면 어머니로서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진정한 어머니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진정한 자비를 베풀고 사는가. 아이들이 올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참다운 지혜를 보여주는가. 탐욕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길이 아닌 길도 걸어가라고 아이들을 부추기지는 않았는가. 세상은 다 그런거라고 세상의 본질을 흐리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가. 돌아보면 될 것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은 오늘도 갈 길을잃고 고통의 바다를 헤매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고, 슬픈 일이다. 우리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나의 바른 마음을 어둠으로 내모는 우상을 타파해야 한다. 허망한 집착이라는 우상, 시기질투라는 우상, 적개심이라는 우상, 과도한 욕망이라는 우상들로부터 자유로울 때 행복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온다.

[2021827일 제1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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