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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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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생명을 귀히 여긴다. 10계 가운데 으뜸이 불살생이다. 살생이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까지 포함된 넓은 의미로 모든 생명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의 태자시절에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제바달다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제바달다가 화살로 기러기를 맞혔다. 우연히 뜰을 거닐던 싯달타 태자가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기러기를 주워 간호하였다.

이때 제바달다는 자신이 화살을 쏘았으니 기러기의 주인은 자기라고 하고, 싯달타는 자신의 집안에 떨어 졌으니 집주인인 내가 주인이라고 옥신각신하였다. 그때 어느 한 노인이 기러기를 살릴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판결에 기러기는 결국 싯달타에 의해 치료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이야기다.

 또 인도의 어느 왕이 장인에게 보물구슬을 주면서 장신구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잠깐 장인이 화장실에 간 사이 거위가 그 구슬을 하나 삼켜 버렸다. 때마침 함께 있던 수행자는 장인에게 의심 받아서 실컷 매를 맞다가 그 매가 잘못하여 거위를 쳐서 거위가 죽어 버리자 그제야 거위가 먹었다고 말했다.

과연 죽은 거위의 배속에는 구슬이 있었다. 수행자는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하루만 참으면 거위가 똥을 누게 되어사실이 밝혀지겠지만 만약 거위가 삼켰다고 하면 당장 거위의 배를 갈라 거위를 죽일 것이 뻔하기 때문에 모진 매를 참았다는 이야기다. 이 또한 한낮 미물의 생명도 존중하는 정신이 기초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는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함부로 남의 목숨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장 소중한 계율로 삼아 지키고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 임종할 때까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생명을 죽이며 산다. 태어나 단 한생명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사바세계는 그런 세상이다.

 혜총스님, 나도 출가하기 전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에 잠자리를 잡아 꼬리를 자르고 풀대를 끼워 날리기도 하고 개구리를 잡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 업들을 참회하면서 산다. 불교에서 살생을 왜 무서운 업으로 생각하느냐 하면 살생은 모든 악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거짓말도 도둑질도 폭행도 삿된 음행도 모두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을 해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생명을 죽이는 것만 살생이 아니라 티끌만큼이라도 남을 해하려는 마음은 모두 살생이다. 봄이 오니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새싹들이 생명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은 시절이다. 선량한 미얀마 국민들의 시위에 총칼로 진압하는 무자비, 부동산 투기로 집 없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아프게 하는 부패한 공직자들의 몰지각함도 우리들의 봄을 시샘하는 살생이다.

 봄은 생명을 어김없이 잉태하지만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는 언제나 봄이 오려는지. 탐욕에 물든 세상 사람들의 마음으로 인해 생명을 살리는 자비심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자비심의 씨를 뿌리고 싹틔우며 봄이라는 희망을 맞이해야 한다. 언제나 춘래우춘래(春來又春來)여야 한다. 봄은 오고 또 봄은 오듯.

 

[2021423일 제1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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