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3>
어떤 사람이 겨우내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살다가 봄을 기다리다 지쳐서 봄을 찾아 나섰다. 구름이 지나가는 산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 오매불망 봄을 찾았지만 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산과 들을 헤매다 자기 집에 돌아와서는 마루에 풀썩 걸터앉아 멍하니 주변을 돌아보는데 마당 한편에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는 매화나무 가지 끝에 무언가 봉곳한 게 보였다. 움이 트고 있었다. 그토록 찾았던 봄이 집 마당에 있을 줄이야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 중에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유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지위가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어린 아이도 노인도,여자도 남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다를 수 없다.다만 무엇을 행복이라 생각하는지 사람의 욕망과 인식의 차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가 보통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물질로 형상화 되어 있다. 재산이나 권력이 첫째가는 행복의 척도가 된다. 얼마나 가졌느냐? 얼마나 누리느냐? 그 ‘얼마나’라는 끝없는 욕망이 행복을 가늠한다고 믿기에 일확천금을 꿈꾸고, 때로는 약한 자를 윽박지르는 소위 ‘갑질’도 해대고, 사기와 협박, 살인까지도 저지른다. 차마 해서는 안 될 악업을 지으면서도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른다.
이런 행복은 늘 어떤 모양을 갖추고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지만 언젠가는 사라지고 만다. 유한하다. 우리는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유한한 이 행복을 찾아 산을 넘고 개울을 지나며 오늘도 고된 방황을 계속하고 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진정한 행복이 찾아질까? 찾았다면 주의해야 한다. 당장은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행복의 유한한 속성을 몰라서 그렇게 잠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부잣집에 하루는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주인이 문을 열자 ‘행복’이라는 예쁜 아가씨가 하룻밤만 묵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주인이 그러라고하자 그녀의 뒤에 추하게 생긴 다른 아가씨가 서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냐고 하자 자신의 언니 ‘불행’이라고 했다. 주인이 행복아가씨만 허락하자 그들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다 했다.
이처럼 행복과 불행은 인생에서 항상 함께 따라 다니는 오누이와 같다. 아무리 행복만을 구하고자 해도 따라오는 불행을 떼어놓을 수 없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지 않던가. 중국 변방의 한 노인이 어느 날 아끼던 말이 달아나 낙담하는데 그 말이 준마를 데리고 돌아와 좋아한다. 그러다 준마를 타던 아들이 낙상해 다리가 부러져 슬퍼하지만, 전쟁이 나서 마을 남자들이 모두 끌려가 죽거나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 노인의 아들은 살아남았다는 고사이다. 인생은 이와 같이 우리의 생각대로 되어주지 않는다.
인생의 길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은 불행이 교차하는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는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행복을 멀리서 찾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땀 흘려 얻는 작은 행복에 만족하기에 항상 즐겁다. 또 그는 남에게 베풀기도 한다. 항상 웃음을 베풀고, 따뜻한 말을 나누고, 어려운 이웃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복지관을 찾아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식사보조도 하고, 말벗도 되어주면서 행복바이러스를 주위에 전파한다. 그는 이런 자신의 작은 행복이 점점 커짐도 안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사람들을 섬기고자 왔다고 믿는다. 진정 나의 봄은 어디 있는가? 여기 있는가, 저기 있는가?
[2015년 2월 27일 제61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