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2>
옛날에 밥을 빌러 다니는 거지아이가 밥을 얻으러 다니다가 어느 부잣집에 가서“밥 좀 주이소오! 예에~!”하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자 주인이 방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더니 달라는 밥은 주지 않고 “오냐, 생각하고 있으마.”하고 한 마디 던지더니 방문을 닫았다. 아이는 가만히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당장 밥을 얻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오면 주겠구나 생각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휘파람을불며 다른 집으로 밥을 빌러 갔다.
그렇게 한참 밥을 빌러 다니다가 다시 그 집에 와서 “어르신, 밥 좀 주이소! 예에!”하고 소리쳤다. 아 그런데 주인이 나오더니 “밥 없다.”하고 무 자르듯이 딱 잘라 말하지 뭔가. 그래서 아이가 짜증나는 목소리로 “조금 전에 아저씨가 생각하고 있겠다고 하셨잖아요?”하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주인이 “이녀석아, 말을 새겨들어야지. 내가 언제 주겠다고 했냐? 나는 줄 생각을 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안줄 생각을 한다고 말한 것이다.”라 했다. 거지 아이는 기가 막히고 성이 났다. 그 집에서 확실히 밥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준다고 하니까 분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화가 치밀어 힘껏 대문을 꽝 차고 나가다가 다리가 삐어 절뚝거리며 돌아갔다.
생각해보면 주인이 준다고 말한 적은 없다. 순전히 그 아이가 혼자서 자기 좋을 대로 상상한 것이다. 자기 혼자 줄 거라고 생각해서 신이 나서 기분 좋게 돌아다니다가 안 준다고 하니까 분한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가만히 보면 우리의 인생살이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기 생각에 빠져서 웃다가 울다가 하며 산다.
자기 혼자 생각에 빠져서 즐거워하다가도 금방 우울해져서 심지어 약을 먹기도 한다. 남녀 사이에서도 남자는 전혀 생각이 없는데 어쩌다 한번 자기 쪽으로 보고 웃어줬다고 해서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상상해서 나중에 가슴 아파한다.
부모 자식 간에도 자식이 나중에 크면 분명히 자신에게 효도하리라 생각해서 온몸을 다 바쳐 키워놓았는데 크고 나면 다 제 갈길 가기 바쁘다. 애당초 나의 행복을 나 자신에서 찾지 않고 남에게 바랐던 자기잘못이 크다. 그렇게 남에게서 행복을 찾으면 남는 것은 허망한 마음뿐이다.
오지도 않은 먼 미래에 대한 허망한 망상, 망령된 생각이 자신을 병들게 한다. 환상 속에 사는 것이다. 꿈속에서 호랑이를 만나 그 호랑이에게 잡아먹혀서 으아악 소리치면서도 가위에 눌려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허둥대는 것과 같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놀음이다.
자기 자신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다. 누가 가져다주는것이 아니다. 오지 않은 것을 미리 슬퍼하고, 지나간 과거에 빠져서 소중한 현재의 순간순간 인생을 낭비한다. 인생의 행복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행복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옳다.
나에게 있는 작은 행복에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 11억짜리 아파트에 살면서도 직장을 잃었다고 방황하다가 토끼 같은 두 자녀와 사랑하는 아내를 죽음으로 내몬 사건을 보면서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시선이 두려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허황된 삶을 살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고통뿐이다.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지금 못 산다고 영원히 못 사는법은 없다. 지금 잘 산다고 영원히 잘 사는 법도 없다. 세상은 무상(無常)한 법이다.
[2015년 1월 23일 제60호 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