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처럼 원하기만 하면 맛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시절이 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음식은 이제 단순히 영양분 섭취를 넘어서 즐기는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스님들이 공양(식사)할 때 외우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허물을 모두 버리고, 바른 생각으로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오로지 도업(道業)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있습니다. 이 음식으로 안으로는 성불의 보약으로 삼고 밖으로는 중생을 위하여 봉사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상하게 유훈하신 말씀에도 오늘날 우리들이 음식을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훈이 있습니다. “너희 비구는 모든 음식을 받았을 때에 마땅히 약을 먹듯이 하고, 좋고 나쁜 것을 따라 더하고 덜하지 말며, 몸을 유지하고 주림과 목마름을 없애는 데에 맞도록 하라. 마치 꿀벌이 꽃을 지날 때에 오직 그 맛만을 취하고 그 빛깔이나 향기는해치지 않는 것과 같이, 남의 공양을 받을 때에는 오직 괴로움을 없애기에 맞도록 하고 함부로 많은 것을 구해서 그 착한 마음을 헐게 하지 말라.”
조선 후기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쓴 ≪규합총서(閨閤叢書)≫는 부녀자를 위해 엮은 여성생활백과의 하나입니다. 여기엔 음식과 술, 옷 만들기, 옷감 짜기, 염색은 물론 양잠과 문방구에 관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면 음식을 먹을 때의 철학인 ‘식시오계(食時五戒)’가 있는데아마도 불교의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그 내용은 차려진 음식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거친 것인지와 음식을 먹기 전에 자기가 할 도리를 다했는지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또 음식만 탐내는 욕심보다는 참다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며, 모든 음식은 저마다 영양이 있는 것이니 맛에만 빠지지 말고 약처럼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하지 않은 사람은 먹지 말라는 훈계도 있습니다.
요즘은 서양음식인 패스트푸드로부터 온갖 음식들이 난무하는데 음식의 수만큼이나 음식에서 오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음식에 대한 이 말씀을 조금만 새겨들어도 건강도 챙기고 탐심을 절제하는 힘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녀들에게 이런 말씀을 들려주어도 일생동안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받으면서 이 시간에 굶주리는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한 톨의 밥알이라도 함부로 하며 음식을 낭비하는 일도 삼갈 것입니다. 나아가 작은 정성이라도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해 베푼다면 세상은 나와 더불어 더욱 밝아지리라 생각합니다.
[2015년 8월 26일 제67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