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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고 통

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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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 여인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에게 아들은 삶의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을 잃었다.
 
그는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죽은 자식을 가슴에 안고 부처님에게 달려가 죽은 아들을 살려 달라고 했다. 부처님은 가엾은 그 여인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도 슬픔을 달랠 수 없음을 알고 말했다. “마을에 가서 지금까지 사람이 죽지않은 집에 가서 불을 얻어오면 아들을 살려주겠다.”아들이 살 수 있다는 말에 여인은 곧 마을로 내려가 불씨를 얻으려고 집집마다 돌아다녔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그 어떤 집도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없었다. 아버지가 죽고,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죽고, 그 여인처럼 자식이 죽은 집도 있었다. 여인은 해가 기울어서야 부처님에게 돌아오면서부처님의 깊은 뜻을 헤아렸다. 자기의 아들을 잃은 슬픔이 자기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이 없어서 고통이지만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이 있어서 고통을 겪는다. 재물이 있는 사람은 재물을 지켜야 하는 고통이 있고 가난한 사람은 재물이 없어서 고통을 받는다. 학식이 풍부한 사람은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실업자가되고 나서 쌓아온 체면 때문에 막노동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우울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많다.
 
고통은 물질이나, 학문, 가문이나 계급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통의 세계에 던져진다. 이 고통을 무엇으로 풀어야 할까 하고 동서고금의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들이 골몰했다. 절대자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구도자의 길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구도자들은 죽음으로부터 고통의 원인을 찾아 들어가 마침내 인간의 무지(無智)가 고통의 근본에 있음을 알았다.
 
무지가 고통을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지하기에 탐닉하고, 무지하게 집착해서 고통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서 마침내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고통을 벗어나는 길은 재산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 물질적으로 풍족하느냐, 학식이 뛰어나느냐가 아니라 고통을 잘 볼 줄 아는데 달려있다. 즉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줄일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고통으로부터 자유롭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편안히 살아간다. 실직하고, 실연하여 밤을 지새우며 극심한 고통에 빠져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돌아본다. ‘누구나 겪는 고통이 아닌가. 앞으로 닥칠 수많은 고통의 일부분이다.’ 하면서 여유를 찾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다.
 
나에게 가난이 고통을 가져왔다면 ‘가난이 가져다 준 고통은 어디서 왔는가. 나는 게으르지는 않았는가. 다른 길은 없는가.’ 하고 바라본다. 병이 들었다면 ‘이 병은 어디서 왔는가. 탐욕에서 왔는가.’ 병을 손바닥 위에 놓고 바라보는 일이 자유를 찾는 첫 번째 열쇠이다. 고통에 빠지는 순간 담담하게 숲속의 호수를 바라보듯 수면 위에 떠도는 고통을 바라보면 고통은 점점 작아진다.
 
[2015625일 제6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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