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닭을 새 세상을 여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다. 삼국유사에 보면 박혁거세왕이 계정(鷄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계림국이라고 하였다거나 왕후가 태어났을 때 입술이 닭의 부리 같았는데 냇가에서 목욕시키니 부리가 떨어져나갔다든가, 탈해왕 때 김알지를 얻었는데 닭이 숲속에서 울었기에 처음에 나라 이름을 계림으로 했다는 등 닭은 개벽의 상징이다.
우리의 전통혼례에서 닭은 좋은 징조로 등장한다. 폐백상 뿐만아니라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집 초례상에 산닭을 묶어서 올렸다. 그 이유는 닭의 볏에 남편이 큰벼슬을 하라는 뜻이 담겨 있고, 달걀은 부와 다산을 의미하며 무엇보다 닭이 새벽을 열어 광명을 가져다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출발하는 신랑 신부의 앞날에 상서로운 광명이 가득하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닭은 길조(吉鳥)로 인식되지만, 귀신을 물리치는 의미로 조상들은 닭과 관련한 날은 근신했다.
정초 첫 번째 닭의 날-상유일(上酉日)에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 이날 부녀자들이 바느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된다고 여겼고, 전남의 어촌에서는 출항을 삼가기도 하고 제주도에서는 이날 지붕을 이지 않는다.
시국과 맞물려 정유년 닭의 해를 맞은 우리 국민들은 어느 때보다 큰 희망을 안고 새해를 열고 있다. 새해에는 모든 권력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기를 기원한다. 새 세상에는 보수도, 진보도 나라의 안녕과 국민을 위하는 국리민복의 새 세상이 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위정자나 재벌들도 모두 특권의식을 버리고 휘두르지도, 휘둘리지도 말았으면 한다. 권세에 빌붙어 뒷거래하면서 선량들을 밟고 올라서려는 마음도, 약자를 울리는 천박한 갑질도 이제는 말아야 한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 그런 나라가 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요, 상생하는 평등한 나라가 이룩된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존귀함이다. 생명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다. 우리는 이 가치를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존공영과 상생이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이 땅의 지도자들이 이런 생명의 수호자로서 살아왔는지 묻고 싶다. 요즘 닭들이 참 불쌍하다. 몹쓸전염병으로 생매장 당한 닭들이 3천만 마리가 넘었다니 그 처참함을 가늠키 어렵다. 살아있는 채로 땅에 묻히는 닭들을 생각해보았다.
멋모르고 잡혀가 구덩이에 파묻히는 그 억울함을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모를 리 있겠는가. 이번 전염병도 국가의 방역시스템이 문제가 돼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는 평이다. 아무리 시대가 흐린 오탁악세라지만 국가의 시스템 부재로 죽지 않아도 될 생명이 죽는다면 그 억울함이 얼마나 하늘에 사무치겠는가.
민간신앙에서 닭은 원혼을 푸는 상징이기도 하다. 원혼을 푸는 굿에서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혼령이 한을 풀고 저승으로 돌아간다는데 속절없이 산 채로 파묻힌 닭들의 영혼은 누가 풀어줄 것인가. 억울함이 닭뿐이랴. 정유년에는 부디 억울함과 원한 없는 새 세상이 열리기를 기원한다.
[2017년 1월 20일 제84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