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제시대에 사할린에 끌려가 천추의 한을 품고 돌아간 영령들을 천도하고자 사할린을다녀왔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 동포들의 뼈아픈 역사를 듣고 국력이 미약하고 나라를 지킬 여력이 없으면 국민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가를 직접 보고 들었다.
살아있는 후손들은 이역만리에서 억울하게 숨져간 희생자들을 기억하고나 있는지, 또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 인지’하는 화두를 안고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다시 또 일어날 수 있다.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여기 있다. 혹한과 기아 속에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헤매던 징용자들에게 일본은 전쟁이 끝나자 자기 국민만 배에 싣고 가면서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지만 거짓이었다.
사할린 동토의 땅에 버려진 4만명이 넘는 조선인들은 영하 50도의 추위 속에 굶어죽고 얼어 죽었다. 겨우 살아남은 몇몇 징용자의 후손이 지금의 2,3세 동포들이다. 그나마 찾은 시신은 공동묘지에 모셨지만 버려진 시신은 셀 수 없다 했다.
해방직후 귀환선 ‘우키시마 마루’가 일본 연해에서 폭침돼 환국의 기쁨에 들뜬 징용자들이 집단 희생된 사건을 비롯해 중국의 휴양지인 해남도 남정현의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했던 조선인 1천여 명은 일본의 만행이 알려질 것을 두려워한 일본 군경에 의해 총칼로 난자당하고 나무에 못 박아 살해당한 뒤 암매장되었다.
이른바 조선인 천인갱(千人坑) 사건이다. 기록에 의하면 1939년 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연인원 700만 명에 이른다 한다. 당시 조선 인구가 2천만 명임을 감안하면 전 조선인의 수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데 군 병력으로 징용된 50여만 명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일본 전범기업들에 의한 노무징용자들임을 알 수 있다. 일본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들까지 조선인의 30%가 넘는 인구를 강제로 끌고 갔다.
그들은 피눈물 나는 고초를 겪다가 전쟁후에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더러는 일제에 학살당하는 등 그 참상은 눈물이 없이는 회고가 안 된다.
그런데도 현재 군위안부 문제 정도만 거론될 뿐 동토의 사할린에서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징용자들에 대해 미쓰비씨 등 일본기업이나 일본정부는 사과도 없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함에도 묵묵부답이다.
당당히 문제 제기를 해야 할 우리 정부도 아무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오늘날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러시아는 제각각 국익을 앞세워 폭풍전야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동북아의 평화와 한일 양국의 장래를 위해서 일본은 지금이라도 진솔하게 속죄하고 양국정부는 과거사의 깨끗한 종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 후손들은 사할린 동토 하늘 아래서 살아있는 역사로서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사할린 영가시여! 일제희생 영가시여! 부디 극락왕생하시라.
[2016년 9월 27일 제80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