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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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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무르익은 남북의 평화분위기가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들은 북한 정권의 태도를 의심하면서도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인지 기대가 크다.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국내외적으로 초미의 관심사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단 하루도 싸움이 없는 날이 없듯이 지구촌에는 전쟁이 없는 날이 없다. 과연 우리는 싸우지 않을 수 없는가? 왜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가?


인간의 편리를 위한 문명의 발달은 우주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는데 이 좁은 지구촌에서는 테러와 전쟁으로 인해 하루도 빠짐없이 피로 얼룩진 슬픔이 진동한다.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의 어느 골목길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아이들을 보라.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인간의 고통을 타파하고자 뜻을 세운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이런 문제를 강 건너불 보듯 한다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생명의 아픔과 함께하는 것이 수행자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평화는 오늘날 우리 종교인들이 가장 절박한 화두로 삼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부처님은 평화를 이렇게 말씀하시고 실천하라 외치셨다. “자(慈) - 뭇 중생들을 사랑하여 기쁨을 주고, 비(悲) - 슬픈 중생을 측은히 여겨 괴로움을 없애주라.” 자비는 인류가 지향해야 할 최고선(最高善)이요, 공동선(共動善)이다. 자비를 실천 하기 위해서는 나를 바라보듯, 남을 바라 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최고다. 내 국가가 최고다’는 의식구조 아래서는 전쟁은 멈출 수 없다. 부처님은 우리는 모두 이웃이니 “부모가 외아들을 목숨을 걸고 지키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 하셨다.


이 세상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은 없다. 누구나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공생관계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미국, 중국처럼 자국우월주의를 내세워 무거운 관세를 부과하고 다른 나라의 삶을 나 몰라라 하는 입장은 또 다른 분쟁의 불씨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은 상대적인 인연관계로 돌고 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의 이익만 쫓다 보면 머지않아 생각지도 못한 큰 손해를 입게 마련이다. 정치는 공생과 평화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


정치를 협상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타협은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정치란 죽이지도 않고 해치지도 않으며, 이기지 않고 적에게 이기도록 하지도 않으며, 슬프게 하지 않고 법답게 다스려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평화를 위한 정치론이다.


정치는 상대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자비로운 마음에서 비롯돼야 한다. 그것이 법다운 다스림이다. 정치를 자비의 구현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전쟁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편협하고 일시적인 자국우선주의를 버리고 대승적인 시각으로 아픔을 공유하려는 자비심으로 상대를 바라보아야 항구적인 평화가 올것이다.

[2018525일 제1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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