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공포가 되고 있다. 시절이 혼탁한 탓인지 잊을만하면 몹쓸 병들이 불쑥 찾아온다. 불행하게도 이런 병들은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병속에 갇힌 새처럼 이런 세상에서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는 처지다. 다만 그때마다 슬기롭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
이번 바이러스도 애초에 막을 수도 있었다. 처음 바이러스를 경고한 중국의사 리원량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면 지금의 세계적 재앙은 겪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중국 당국은 중국 인민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리원량의 경고를허위사실 유포로 간주하고 오히려 그를 탄압하면서 바이러스를 조기에 차단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직된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누구나 존귀한 성품(性品)을 지니고 있다. 이 성품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명력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이 성품을 미혹한 중생이 한계 상황을 벗어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불성(佛性)이라 말한다. 각자 지니고 있는 이 존귀한 성품에 스스로 눈 뜰 수 있다면 우리는 진리의 깨침은 물론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이 불가사의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데도 이 사실을 깨닫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 봉준호 감독이 만든‘기생충’이란 영화가 오스카영화제를 점령하며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을 성취 할 때 사람들은 하기 쉬운 말로 기적이라 표현하지만 이것은 운도 아니요, 기적도 아니다.
기적이 아니라 인간의 성품이 눈앞에 드러난 현실에 다름 아니다. 중국이 오늘날 세계의 흐름에 영향력을 지배하는 거대한 국가임에는 틀림없으나 지금과 같이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가 개인의 존귀한 성품마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진정한 대국(大國)을 이룩하기는 요원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미국, 러시아 등 열강에 비해 턱없이 작은 국토에다 부존자원도 부족하다. 우리나라가 세계의 열강과 당당히 겨루며 번영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존귀한 성품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성품을 최대한 발현시키는 일이야말로 위정자나 교육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나의 성품 속에는 세계를 놀라게 한 봉준호 감독은 물론 공자나 마하트마 간디, 아인슈타인, 발명왕 에디슨이나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모두 살아 숨쉰다. 이 불가사의한 나의 성품에 눈을 뜰 때 나는 이미 세계의 주인이다.
무엇이 무서울 것이며, 무엇을 이루지 못할것인가. 국민 모두가 각자의 생활 전선에서 자기의 무한능력에 자신감을 갖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걸어가기를 기도한다.
[2020년 2월 24일 제121호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