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일(노동)은 필수조건이다. 일이 없으면 모든 관계로부터 멀어진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모든 행위가 생산되는 물질의 유통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현대에서 일이 없다는것은 사회적인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개인적으로는 일을 가지지 못함에 따른 고독과 소외가 병의 원인이 되고, 사회적으로는 일을 갖지 못함에 따른 지위상실과 인간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고립이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물론 일에 부대껴서 신체적인 휴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 있음’이 ‘일 없음’보다는 백번 나을 것이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어 큰일이다. 일자리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가만히 두면 각종 사회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현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정부는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만들어 놓고 일자리를 챙기겠다고 신경을 쓰는 듯 하더니 요즘은 일자리정책이란 말조차 듣기 힘들다. 말로는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드는 일자리는 한계가 있다. 일회성이 아닌 제대로 된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기업의 기를 살려서 기업이 활성화되도록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은 반드시 가져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을 가지되 일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자신을 스스로 해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일의 노예가 되어 일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정의나 양심, 도덕마저도 내팽개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일에서 헤어 나올줄 모르면 그것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일이 인생의 행복을 위한 삶의 도구가 되어야지 또 다른 걱정과 번민을 생산하는 공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일 있음’ 속에서 아무런 걱정이 없는 ‘일 없음’으로 사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불교에서는 깨친 사람을 무사인(無事人)이라고 한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일이란 생로병사에서 오는 모든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니 결국 무사인은 모든 걱정에서 벗어난 대자유인을 말한다. 우리들이 무사인이 되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온갖 번뇌들이 난무하는 일상의 일 속에서도 자신의 근본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할일을 찾아 열심히 하되 그 일이 주는 번뇌의 요소들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넌지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숲속에 들어가면 나무는 볼수 있어도 산을 볼 수는 없다. 일 속에 파묻히면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볼 수 없다. 나에게 득이 될까 실이 될까만 생각하지 말고 득이 되는 순간에도 실이 되는 순간에도 이 순간이 영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담담히 숲속의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듯이 살아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럴 때 일이 주는 부담감도 사라지고 용기도 생긴다. 진정한 일의 즐거움도 찾을 수 있다. 부디 ‘일(노동) 없음’으로 고통 받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모두 일을 찾고 진정한 ‘일 없음’ 속에 웃음을 찾기를 고대한다.
[2019년 11월 25일 제118호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