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생활환경이 많이 청결해지면서 도심에서는 잘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파리가 참 많았습니다. 주인이 청하지도 않는데도 밥상 위에 먼저 찾아와 귀찮게 하는 불청객이지요. 사람들은 파리가 병균을 옮긴다고 음식에 앉기 무섭게 훠이훠이 하고 내쫓습니다.
이 파리를 가만히 관찰해보면 참 재미있는 행동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뭔가 용서해 달라는 듯 두 손과 두 발이 닳도록 싹싹 빕니다. 그러다가 가끔씩 긴 뒷다리로 날개를 쓰다듬기도 합니다. 왜 파리는 그렇게 쉬지 않고 어디든 앉기만 하면 두 손을 비빌까 궁금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냄새를 잘 맡고 맛을 잘 느끼기 위해서 라고도 하고, 어디든 잘 붙어있기 위해 먼지를 털어서 청소를 한다고도 합니다. 과학적인 이유는 접어두고 끊임없이 비벼대는 파리의 모습에서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스님은 이 파리의 행동을 보면서 어릴 때 어머니와 할머니가 가족의 안녕을 위해 정성 드리는 모습을 연상합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우물가 장독에 정화수井華水를 떠다놓고 소원을 빌고 또 빌던 그 모습입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붉은 해를 보고 손을 비비며 절을 하시던 그 모습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 옆에 서서 조상님께 비는 그 모습입니다. 정월 대보름날 둥근 달이 떠오르면 뭐라고 입속에서 중얼거리며 두 손을 비비시던 그 모습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그 옆에서 따라 빌며 절을 하곤 했습니다.
해를 보고, 달을 보고, 나무를 보고, 허공을 보고 비는 그 마음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빌 때는 자기를 비우는 순간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마음입니다. 거짓과 허영, 허세를 참회하고 드러내는 마음입니다. 그 대상이 부처님이든, 산신령이든, 하나님이든 비는 그 마음은 다 같은 마음입니다. 행복을 빌거나, 꿈을 빌거나, 무병장수, 학업성취를 빌거나, 마음속의 바람을 기원할 때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한 없이 낮추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빌지 않습니다. 나야말로 최고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은 손을 비비지도 않습니다. 더욱이 머리를 숙여 이마를 땅에 닿도록 엎드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제왕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대재벌이라 하더라도 빌지 않는 사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위급한 일을 당하면 손을 마주잡고 무언가에 매달립니다. 죽음을 앞에 두면 더 간절해집니다. 그때는 정말 손바닥의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질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빌어야 합니다. 무릎이 까져 피가 흐르는 것도 잊고 매달려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간절히 달려들어야 합니다.
누가 보든 말든 개의치 말고 자신의 존재마저도 잊고 전념하는 기도삼매, 염불삼매에 빠져야 합니다. 일념一念, 한마음이 되어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일을 성취하거든 언제나 이렇게 기도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원하는 바가 설령 없더라도 항상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2022년 9월 23일 148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