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2일

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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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년시절에 자운 노스님께 글을 배울 때였습니다.

노스님은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습니다. 노스님은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씨가 나쁜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릴 때 그 말씀이 머리에 남아 지금까지도 마음에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자운 노스님께서 해인사 주지로 계실 때, 스님은 방 앞에 백 포기에 가까운 화초를 가꾸었습니다. 어느 날 자운 스님을 따라서 근 열흘을 넘게 부산에 다녀오니 꽃이 다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도반들에게 물을 주라고 부탁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심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자운 노스님이 부르셨습니다.

혜총아, 네가 꽃을 사랑하느냐?”

, 꽃을 사랑합니다.”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되물으셨습니다.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

……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꽃을 사랑할 줄만 알았지 꽃이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노스님은 꽃이 너를 사랑할 때까지 너는 꽃을 사랑하지 마라.” 하셨습니다.

그때서야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사랑의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를 화두삼아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꽃이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안의 욕심만으로 잘 자라고 있는 소나무의 뿌리를 잘라내고, 단풍나무의 가지를 쳐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나무를 더 예쁘게 만들어보고 싶어서 철사로 꽁꽁 동여매어 나무의 몸을 이리저리 둥글게 말아 분재를 만듭니다.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맛있는 먹이를 주면서 사랑한다고 돌고래의 입장에서 진정한 사랑일지.

나무를 예뻐하는 마음이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나무를 구속하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나무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으니 언제 나무의 입장이나 생각해보았겠습니까? 나무의 입장이 되지 않았으니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기쁨도 슬픔도 상대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입니다. 둘이지만 둘이 아닌 한 몸이 되어 함께 숨 쉬면서 서로의 아픔도 슬픔도 나누는 마음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사장과 종업원 간에도, 지도자와 국민 간에도 한 마음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마음이 되면 상생(相生)이 됩니다. 그때부터 서로 사는 길이 열립니다. 요즘은 가뭄에, 홍수에, 전염병에, 치솟는 물가에 여간 어려운 시절이 아닙니다. 철없는 아이마냥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도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가까이 다가가고자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수많은 꽃들을 죽인 후에야 어떻게 사랑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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