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에는 “살아 오백 년, 죽어 오백 년”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십장생의 하나인 소나무는 예로부터 그 질긴 생명력과 변함없는 모습을 흠모하여 절개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소나무 송松자의 유래는 진시황의 일화에서 비롯합니다.
진시황이 길을 가다 소나기를 만나 한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게 되는데 그 나무에게 ‘목공木公’이라는 벼슬을 내렸지요. 우리말의 ‘솔’은 나무 가운데 으뜸, 우두머리를 뜻하는 ‘수리’가 변한 말이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 아래서 태어나 소나무와 더불어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고 할 정도로 평생을 소나무와 함께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솔잎을 끼운 금줄을 만들어 대문에 달았고, 장을 담글 때도 그랬습니다.
아기가 아프면 삼신할미에게 빌기 전에 바가지에 맑은 냉수를 떠서 솔잎에 적셔 방안 네 귀퉁이에 뿌리며 잡귀를 물리치고자 했습니다. 혼례식의 초례상에도 소나무와 대나무 가지를 꽃병에 꽂아 양쪽에 놓았습니다. 그것은 소나무의 잎이 모두 짝으로 되어 있어서 금슬 좋은 부부가 되라는 뜻과 송죽의 지조와 절개로 살라는 뜻입니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 관 속에 누워 솔밭에 묻혔습니다. 무덤가에 소나무를 심는 것도 조상의 묘역을 청정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또한 산에 있는 산신당의 신목神木은 거의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신성한 나무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신들이 하강할 때 높이 솟은 소나무 줄기를 택한다고 믿었습니다. 신목으로 정해진 소나무는 신성한 나무이므로 함부로 손을 대거나 부정한 행위를 하면 재앙을 입는다고 믿었습니다.
수백 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시사철 늘 푸른 소나무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도교에서는 ‘껍데기는 용 비늘 같고, 잎은 말갈기 같으며, 눈서리를 맞아도 시들지 않고, 천년을 지나도 죽지 않는다.’하여 신선에 비유했습니다.
이렇게 귀하신 소나무가 불에 잘 타는 송진을 머금고 있는 탓에 요즘은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고, 병충해를 입어 누렇게 병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율곡 이이는 “소나무를 아끼는 것이 애국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꿈에 소나무가 무성함을 보면 벼슬길이 열리거나 집안이 번창하는 반면에 소나무 숲이 많이 죽으면 그 해에 사람이 많이 죽고 소나무가 마르면 사람에게 병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통도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산문입구에 길게 늘어선 소나무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키보다 몇 배나 높이 솟구친 소나무의 우람한 모습을 보면서 소나무가 참 도인이란 생각도 했습니다. 능선을 따라 띄엄띄엄 보이는 휘어지고 못생긴 나무도 좋았습니다. 스님들께서 그런 나무를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휘어지고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는 법이다.” 잘 생긴 나무가 재목감으로 잘려나가도 모진 비바람을 이겨낸 작고 휘어진 소나무는 산을 지킵니다.
천년세월을 지켜내는 꿋꿋한 소나무의 그 모습이 바로 우리 민족, 우리의 면목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