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1일

임종수의 세상만사

식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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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집사? 생뚱맞은 신조어 앞에 아날로그 초로는 잠시 머릿속을 굴려본다. 두 말 할 것 없이 요리를 떠올린다. ‘은 아마도 일 테고, 집사야 뭐 집안일을 보는 사람을 지칭하니 홀로 집에서 요리하는 은퇴남식집사라 부르지 않을까. 아니면, 퇴직한 남편의 끼니 치다꺼리 하는 아내들을 지칭할지도. 아날로그의 상상력은 딱 거기까지.

고양이나 개 등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뜻하는 집사식물을 합성해서 만든 조어가 식집사’. 온갖 식물들을 거실에서 반려동물처럼 애정을 쏟으며 기르는 사람을 가리킨단다.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집안에 틀어박혀 취미 삼아 반려식물들을 키우는 식집사들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란다.

교단을 떠난 지난해부터 아내도 식집사 대열에 합류했다. 구석진 데서 해피트리와 군자란 화분만이 휑뎅그렁하게 놓여 있던 넓은 거실에 하나둘 씩 새 식구들이 입양되기 시작했다. 청보라 꽃이 가슴에 와 닿는 장미수국, 코끝에 감도는 향이 기막히게 좋은 로즈마리가 집 근처 농가의 온실에서 껑충한 우리 집 해피트리 그늘 아래로 기어들었다. 때로는 뒷산 기슭의 이름 모를 화초도 아파트 거실로 데리고 왔다. 부지런한 식집사답게 아내의 새 식구 입양 행렬은 멈출 줄 몰랐다. 청산호, 크테난테 아마그리스, 아악무, 율마, 하트아이비, 카랑코에, 호접란, 호야, 스칸디아모스, 워터코인, 인도고무나무.

알레르기 질환 탓에 털 날리는 개나 고양이를 돌보기 어려운 아내에게 식집사가 제격인 듯.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한 두 아들은 파양한 고양이 햇님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으니, 냥집사가 된 셈이다. 나이 든 아날로그세대들은 외로운 인생의 동행인으로서, ‘히키코모리에 익숙한 젊은 디지털 세대는 소통의 창구로서 동식물들을 키우는 일이 익숙해지고 있다.

식집사든 냥집사든, 함께 멀리 가야 할 친구들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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