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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수의 세상만사

성지곡수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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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 사는, 특히 서울 출신 친구들이 부산 사는 나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하나다. 탁 트인 바다를 맘껏 즐길 수 있다는 거겠지. 정작 부산 사는 난 겨우 한해 한두 번 정도 바다를 볼 뿐이다. 바다를 끼고 살고 있지 않을 뿐더러 썩 내켜하지 않기도 해서다.

대신 산을 더 즐긴다. 깊은 데는 깊은 데로, 얕은 계곡은 그대로 늘 어머니 품속 같은 산이 좋다. 게다가 제법 넓고 깊은 저수지라도 품고 있는 계곡과 산이라면 금상첨화다. 주변 숲과 동식물, 파란 하늘까지 푹 껴안고 있는 저수지는 영판 어머니의 풀어헤친 가슴팍이다.

저수지에서 풍겨오는 물내는 어렸을 적 이후 기억의 깊은 창고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그 냄새다. 달콤한 듯, 비린 듯, 때론 강한 장미꽃 향기가, 어떨 때는 은은한 난초향 같기도 하다.

내가 종종 백양산 자락의 성지곡수원지를 찾는 이유도 이런 내 성향 탓이다. 문득 고향의 어머니가 억수로 그리울 때 성지곡 숲속과 저수지로 풍덩 뛰어든다. 지난 주말 친한 어르신들과 함께 백양산 산행에 나섰다.

편백나무 숲을 좀 오르니 눈부신 호수가 펼쳐져 있다. 유모차의 아이도 지팡이를 든 어르신도 호수에서 쉬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저마다 아쉬워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어디 사람뿐이랴.

산새들과 산짐승들도 때 이른 한낮 무더위를 피해 저수지에 제 몸을 담그고 있다. 작열하는 해를 가려주던 울창한 숲도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짙푸른 속살을 드러낸 채 저수지에서 잠영을 즐기고 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려는 잉어 떼들이 물속에서 유영을 하는 건지 파란 하늘 위로 훨훨 날아다니는지 분간되지 않는다. 아예 하늘은 태양까지 성지곡수원지 깊은 물속으로 끌여들였다.

1909년 대한제국 멸망 전 일본인들이 만든 식수 댐. 편백나무 숲이 내보는 물속에 아이들은 웃음 담고 은퇴한 노인들에겐 놀이터. 세대가 녹아있는 성지곡수원지다. 부산, 바다가 아니라 도심 한복판의 성지곡수원지가 유달리 나를 잡아끌고 있다.

지난 주말 성지곡수원지 물속에는 시가 있는 숲까지 잠겨 있었다. 자연도 인문도 성지곡수원지를 풍성하게 한다. 자연이 인문을 부르고, 인문이 자연을 더욱 살찌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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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623일 제8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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