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3일

임종수의 세상만사

한낮의 뜨거운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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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서먹했던 자리가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트인 대화로 인해 조금씩 소통으로 데워지기 시작 했다. 다들 NGO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서 지역현안 문제를 비껴가지 않았다.

“김해공항 확장문제가 빠르게 진행되는 모양입니다. 참 잘된 일입니다.” 격세지감.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동남권신공항 입지를 놓고 부산 가덕도와 밀양이 서로 유치하겠다고 첨예하게 다퉜다.
 
‘기존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중재적 제안마저 지역사회에서는 '반역'이었고, ‘금기시 된 행위’였다. 흑과 백, 양자택일뿐이었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너도나도 ‘김해공항 확장’을 얘기한다. 그날 자리도 그랬다.
 
스님과 기독교장로가 함께 자리해서인지 다종교 통합운동으로 나아간 말문이 뜻밖에 남북문제로, 통일문제로 옮아간다. 사드(THAAD :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국내배치로 나라 안팎이 시끌시끌하던 차에 자연히 귀 기울여질 수밖에.
 
다만 숲속 비둘기들이 엿들을세라 다들 조심하는 눈치였다. 일행 중 둘이 몇 년 전까지 꽤 오랫동안 북한땅에서 벌인 봉사활동 이력 탓에 대화의 양은 초반부터 넉넉했다. 개성공단이며, 종교나 문화교류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북한사람들에 대한 첫인상도 재미있었다. 순진하더라는 데 둘은 공감했다. 스님이 그랬던가. 북한사람들이 처음 남한 사람들을 대했을 때 대화의 단계를 몇 단계로 나누더라고. 맨 처음 생각으로 말하다가, 그 다음엔 눈으로, 입으로 말하더란다.

첨엔 철저히 주체사상으로 훈육된 생각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는 말을 걸지 못했겠지. 더 자주 만나면서 조금씩 남쪽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고, 입으로 마음을 조금씩 열고 말하더란다.
 
마지막 단계는 ‘비즈니스 대화’였다. 자신들의 ‘못난’ 부분을 수긍하고 ‘더 가진’ 남쪽을 이해하기 시작하더라는 거다. 소위 개방이 이뤄진 셈이다. 개성공단이나 남북 간 종교·문화교류가 그 중심역할을 했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발전단계에서의 개성공단 폐쇄조치는 한반도 상황을 끔찍하게 만들었다는 거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이날 대화에서 내 가슴을 사로잡은 한 마디.

“개성공단은 북한 땅에 원자폭탄 하나를 터뜨린 것과 맞먹는 위력을 가집니다. 개성공단을 성공시킨 다음 북한 땅에 대여섯 군데 더 ‘제2, 3의 개성공단’을 건설한다면 그 숫자만큼 원폭 투하의 효과를 가져다 줄 겁니다.

여기서 원폭은 진짜 폭탄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상과 개방을 뜻합니다.” 서로 대화를 통해 남북협력 사업을 확대함으로써 북쪽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에 이바지한다는 논리였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이 그 논리에 동조하지만, 지금은 금기시 된 주장이다. ‘김해공항 확장’ 주장이 그랬듯이, ‘남북대화’라는 화두도 하루빨리 세상 밖으로 자유롭게 나와야 한다.
 
이념의 굴레에 꽁꽁 갇혀 있던 뜨거운 화제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자 의외로 몸과 마음이 시원해졌다.
 
 
[2016715일 제7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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