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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수의 세상만사

무슬림 포비아(pho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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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오전 11시쯤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요 몇 주 동안 매번 느끼지만 휴일인데도 지하철은 제법 붐빈다. 일요일마다 TV앞에서 비스듬히 누운 채 킬킬대는 ‘방콕’족에겐 낯설고 어색한 풍경이다.
 
서면까지 20여분 서서가야 하나 했는데, 가운데에 빈자리가 눈에 띈다. 출발하는 열차와 함께 내 몸 역시 잠시 덜커덩거리면서 엉금엉금, 엉덩이를 비좁은 좌석에 살짝 걸친다. 겸연쩍은 속내라도 모면할 겸 스마트 폰을 꺼내 인터넷 뉴스서핑으로 허우적허우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속칭 IS가 테러행위를 저질렀다는 뉴스. 갑자기 내 지척까지 테러가 다가온 듯해 잠시 섬뜩. 한데 진짜 공포는 그다음 순간이었다. 피로해진 눈 탓에 비로소 고개를 들어 앞과 좌우 동승인들을 살핀다.
 
내 오른쪽 어깨와 맞닿아 있는 이가 아랍청년이다. 문득 가슴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던 공포가 폭탄처럼 꽝,하고 터져 나온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거리고, 등과 어깨에 천근의 무게가 짓누른다. 심장도 폴짝폴짝, 호흡 역시 점점 가팔라진다.
 
내 몸을 덮친 공포는 나약해진 몸을 이내 장악해서일까, 살고 싶다는 본능의 지푸라기만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얼굴 전체를 뒤덮은 턱수염,윤곽 뚜렷한 얼굴선, 오뚝한 콧날과 눈매, 피부색…. 복면만 하지 않았을 뿐 영락없이 사막 한가운데서 이방인에게 죽음을내리는 테러리스트 IS대원 모습을 한 게 내 옆 동승 친구였다.
 
좌석에 걸쳐진 엉덩이를 들어올리길 수차례. 행여 그 들썩임조차 옆 무슬림청년에게 들킬세라 조심 또 조심. 순간 무슬림청년이 가슴에서 끌어안고 있던 가방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할 땐 온 신경들이 바늘처럼 곧추세워졌다. 특히 두 귀와 두 눈은 온통 아랍청년의 가방에 집중됐다.
 
시한폭탄의 재깍거림마저 환청으로 들려왔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순 없다. 결단하고 결행해야 했다. 부산대역에서 내리려고 엉덩이를 떼려는 순간 옆 아랍청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더듬어간다. 끌어안고 있던 가방을 조심스레 등에 멘다.
 
으아아악, 젊은이들이 많은 대학가를 노렸나. 공포감이 머리털에까지 솟구쳤다. 끼이익, 덜커덩. 열차가 서고, 열린 문으로 아랍친구가 빠져나가면서 내 몸을 지배하고 있던 공포도 따라 내렸다.
 
난 딱 5분 동안 지독한 무슬림 포비아(phobia) 덫에 빠져 있었던 거다. 부끄러웠다, 내 인식의 편협함과 비겁함에. 어찌 뉴스와 언론 탓으로만 돌리겠나. 저녁에 집에 돌아와 내 졸렬함을아내에게 부끄럽게(?) 털어놨더니 되돌아온 말 한마디.
 
“아직도 공황장애에 시달리나.” 내 안의 비겁함에 면죄부를 쥐어준 아내가 더없이 고마웠다.
 
[2016년 1월25일 제7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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