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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수의 세상만사

영원한 시민운동가, 이종석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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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부전시장 어귀에서 한 어르신이 우렁찬 목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문득 정글 속 맹수가 그려졌다. 그래서인지 사자후같기도, 포효처럼 들리기도 했다. 허공으로 내두르는 손동작에서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부릅뜬 그의 두 눈은 모여든 청중들에게 오롯이 다가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담긴 메시지의 느낌이 그때그때 달랐다. 때론 분노감이 담겨 있기도 했고, 때론 애잔한 하소연을 보듬고 있기도 했다.
 
후다닥 지나치려던 사람들의 바쁜걸음들이 멈칫거렸다. 몇몇은 이내 두 눈을 치뜨고 두 귀를 쫑긋 세워 어르신의 ‘소리’에 붙들렸다. 낡은 세대들이 참아낸 온갖 불편함과 오래 묵은부조리함에 온몸으로 맞서 ‘따뜻한 희망’을 새 세대에 되돌려주려 했다.
 
깊게 패인 주름살, ‘저승꽃’이라는 검버섯, 하얀 머릿결에서 그의 세월이 짐작될 뿐이다. 1930년생이니, 올해로 여든 다섯. 한데 인생 종착역에 다다른 느낌을 찾을 수가 없다. 하얀 와이셔츠에 빨갛고 파란색 계통의 넥타이, 잘 차려 입은 양복 정장차림에서는 도무지 그의 세월은 오래 정지돼 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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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사회단체총연합 상임의장인 이종석 박사. 평생 시민운동에 몸바쳐온 분이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신문 칼럼을 통해 사회변혁에 관심을 가졌다. 고향 선배 나림 이병주 선생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5.16 직후 이병주 선생이 일하던 한 언론에 기고한 칼럼 탓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경실련이란 단체를 만들어 경제민주화에도 앞장섰다. 낙동강 식수를 지키려고 위천공단 저지투쟁에도 뛰어 들었다. 미군정의 상징과도 같았던 부산진구 하얄리아부대를 이전시키고 그곳에 부산시민공원을 조성하는 일에도 그는 빠지지 않았고, 당시 활동들이 담긴 그의 흔적들이 시민공원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아흔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올해 6월엔 기어이 고리원전 1호기 폐로 결정을 정부로부터 받아냈다. 진보든 보수든, 부산 시민사회로부터 공히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유일한 시민운동가는 그뿐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가 두어 달 전부터 생의 마지막 시민운동에 시동을 걸었다. 부산 최대 도심지역인 서면의 기찻길을 지하화하는 일이다.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지상으로 통과하는 도심의 낡은 철도는 사람다운 삶을 어렵게 합니다. 시속 수백킬로미터를 내달리는 고속열차에다엄청난 무게의 화물열차까지 도심지를 질주하는 것 또한 삶의 질을 고려한다면 사라져야 할 도심의 살풍경일따름입니다. 삶의 질을 위해선 도심철도는 반드시 지하화 돼야 합니다.”
 
노기 띤 그의 목소리는 결코 맹수들의 울부짖음이 아니다. 지극히 따뜻한 사람의 목소리일 뿐이다.
 
 
 
 
[2015년 11월 20일 제70호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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