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3일

임종수의 세상만사

시민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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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이다. 바쁜 출근길 허겁지겁 지하철 객차 안으로 뛰어들며 빈자리를 찾았다. 웬걸, 나보다 먼저 떡, 하니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는 녀석들이 있다. 드문드문 승객들이 녀석들 사이에 낀 꼴이다. 녀석들의 정체는 A4크기의 유인물이다. ‘부산시장이 해결해야 합니다.’ 초면부터 강하게 우리들을 몰아붙인다. 그리고 “부산시민 여러분!”하면서 ‘택시회사들의 불법적인 사납금 제도’를 규탄하고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녀석들을 지하철에 태운 사람들은 부산시청앞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생탁’ 제조사와 에이치교통이라는 택시회사 근로자들이었다. “시장은 시민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상식 아닙니까?” “억울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계속 외면하는 시장은 끝내 유권자인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의 농성이 넉 달째라니, 상식이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의 피 끓는 유인물 위로 낯익은 몇몇의 얼굴들이 겹쳐진다.
 
그날 저녁 병원 이웃주민들을 만났다. 그들은 수년 째 경전선 복선전철의 서면도심 지상통과를 강력 반대하고 있다. 시끄럽다고 하소연하면, 소음이 기준치 이하라는 그들만의 과학적 잣대로 외면했다. 궁극적으로 케이티엑스가 다닐 요량이면서 왜 도심 통근열차라고 꼼수 부리려느냐고 항의하니 ‘지금은 그런 계획이 없다’는 말로 빠져 나간다.
 
주민들을 속 터지게 하는 건 따로 있다. 주민들에 의해 ‘주민의 대표’로 뽑힌 이들이 되레 철도당국의 역성을 드는 데 뿔났다. 얼마 전 주민설명회에서의 일을 꺼내면서 한 주민이 독을 뿜어냈다. 어떻게 주민의 대표라는 선출직 공무원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더러 ‘세월호’ 운운하느냐는 거다.
 
지난 7월 중순 주민설명회 때 한 정치인이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지금 계속 사실이 아닌 것 가지고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됩니다. 지금 세월호 사건도 보세요. 도움이 안 되거든요. 그리고 저희 장례식장(양정동 모 요양병원 장례식장) 때문에 문제가 많았는데 막 데모하니까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이것을(서면도심 철도 지하화) 우리가 합리적으로 풀어야 됩니다.” 주민들을 분노하게 하는 건 소위 선출직 공무원들의 태도다. 재산권보호와 최소한의 행복추구권을 주장하는 민원인들을 “떼나 쓰고 보채는 사람들”로 폄하하는 데 있다.
 
자신들의 주장 탓에 행여 국가대사가 지연되거나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는 주민들, 그들도 합리적인 해결을 원한다. 어쩌면 당국이나 주민대표라는 선출직 공무원들의 외면이 ‘시민들’을 자꾸 고공 농성장으로 내몰고 있지 않을까. 정치인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도 더불어 깊어진다. 내 이웃의 이야기를 담은 유인물을 지하철에서 만날까 걱정이다.
 
논어의 공자 말씀으로 씁쓰레함을 달래본다. 제자 자공이 공자께, 정치가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다. 이에 공자는 “足食, 足兵, 民信之矣.(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비도 풍족하게 하고, 백성들이 믿게 하는 것이다.)" 하고 답했다. 그는 그 중에서도 ‘민신(民信)’, 즉 백성들이 믿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 정치인들의 신뢰회복이 절실한 요즘이다. 시민에 대한 정치인의 예의도 덩달아 절실하다.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시민의 불복종’에서 답을 찾아야 할까. “정부는 뛰어난 지능이나 정직성으로 무장하기 않고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시민들은 내년 총선을 기다리고 있다.
 
[2015826일 제6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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