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수의 세상만사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부부문화를 퍼지게하고 건전한 가족문화를 정착시키며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해’ 2007년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 그래서인지 SNS상에도 부부의 날과 관련한 글과 여러 이야기들이 떠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시 한편.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느 노부부의 실제 에피소드를 소재로 쓴 황성희 시인의 ‘부부’다. “낱말을 설명해 맞히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할아버지 /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 ‘웬수’ /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 ‘아니, 네 글자’ / ‘평생 웬수’ // ….”
‘웬수’는 경기나 경상, 전라지역에서 쓰는 ‘원수(怨讐)’의 방언이다. 한데 결혼식 날 가족은 물론 숱한 하객들 앞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를 약속했던 ‘부부’가 천생연분은커녕 ‘원수’라니. 그것도 ‘평생원수’란다. 자기나 자기 집에 해를 입혀 원한이 맺히게 된 사람이나 집단을 뜻하는 ‘원수’와는 달리 ‘웬수’엔 질긴 애증(愛憎)이 공존한다. 미운 정 고운정이 들어버린 사이라는 거다.
원수처럼 가증스럽다가도 축 처진 남편의 어깨를 바라보면 이내 측은지심이 울컥 솟구친다. 따발총처럼 퍼붓는 아내의 잔소리가 오래 숙성된 정마저 떨어지게 하다가도 가녀린 두 어깨가 들썩일 땐 애절한 세레나데로 다가온다. 이처럼 애(愛)와 증(憎)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웬수’끼리의 관계유지엔 소통이 최우선이다. 한데 이게 영 쉽지 않다. 남편과 아내가 소통에 임하는 자세부터 달라서일까.
며칠 전 입원해있는 아내에게 들렀다가 내 사무실을 찾아온 후배의 하소연에서 ‘웬수’가 감지된다. 그는 ‘이유 없는’ 아내의 병증부터 걱정했다. ‘이유 없다’는 그의 말은 진실이 아니다. 그의 아내는 신경증(neurosis) 진단을 받았다. 심리적 갈등이 있거나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과정에서 무리가 생겨 심리적 긴장이나 증상이 일어나는 인격 변화를 ‘신경증'이라 한다.
여기서 후배는 강하게 반발한다. 자기 아내가 받을 스트레스가 없다는 거다. 우리 둘은 서로 비슷한 나이대여서 부부관계 역시 공유할만한 게 많았다. 제법 깊숙이 얘기하게 됐다. 회사 대표인 후배는 몹시 바쁘다. 매일 한밤중에 퇴근하다보니 최근 몇 년 새 집에서 밥을 먹은 횟수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것. 와중에 빨래며 청소며 집안일을 ‘거든다’고 했다. 이런 아내에게 스트레스라니…. 그는 자꾸 자기 아내의 병인(病因)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했다.
어쩌면 그리도 나를 닮았던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정근 박사가 결국 한마디 거들었다. “사모님이 아픈 이유는 후배님 탓입니다. 후배님은 한밤중 귀가로 인해 때늦은 상차림을 안 해도 되니 아내가 불편할 게 뭐 있겠느냐고 하지만 ‘아내’들에겐 그게 바로 병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후배의 얘기를 듣다보니 명언 하나가 떠오른다. 19세기 말 영국 총리를 두 차례나 지낸 벤 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이다(그의 아내도 내조 잘하기로 익히 소문나 있다). “가장 과묵한 남편은 가장 사나운 아내를 만든다. 남편이 너무 조용하면 아내는 사나워진다.” 마치 100년의 시공을 넘어 ‘남편’인 나를 꾸짖는 듯하다.
[2015년 5월 25일 제64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