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이로 올해 마흔둘이다. 동안이지만, 그래도 이마나 눈 밑에 세월의 굴곡이 주름져 있다. 고교를 졸업한지 스물두 해만에 ‘제대로 된’ 직장을 찾는 셈이다. 재수 끝에 들어간 대학마저 전공이 맞지않아 일학년 마치고 군에 입대해버렸다.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다시 고민했다. 과감하게 새로 도전하기로 했다. 엔지니어의 꿈을 포기하고 의사의 길을 택했다. 이태 더 공부한 끝에 소망대로 의대에 합격했다. 대학에 이어 인턴, 레지던트, 대학병원 전임의 등을 거치면서 걸린세월이 꼬박 열두 해였다. 어제 만난 그에게서 지인의 아들이 느껴졌다.
며칠 전 지인의 아들이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의사 지망생이라고 했다. 지방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을 두 차례 실패한 뒤 군에 입대했다가 최근 제대했단다. 올해 서른 살인 그였지만,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사의 꿈을 포기하기엔 나중에 더 크게후회할 것 같아서 다시 도전장을 내밀고 싶다고 했다. 재출발 직전, 병원에서 일하는 내게 격려라도 받고자 했던 그가 되레 찬물만 한 바가지 뒤집어쓴 꼴이 되고 말았다.
의사라는 직업이 마냥 호시절만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갈수록 의료계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영리법인이라도 도입되면 의사의 사회적 지위는 크게 떨어질 거라고의료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다,
그 좋은 스펙과 능력을 갖고 왜 굳이 의사만 고집하느냐, 대기업 직원들마저 선망하는 국책 연구소 연구원이나 공무원도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다. 격려 대신 설득하는 내게 그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올해 운 좋게 의전원에 합격한다 하더라도 네가 제대로 의사생활을 하려면 최소 십이 년 정도의 시간을 더 투자해야한다, 나이 마흔둘에 비로소 시작하게 될 ‘의사로서의 네 삶’이 얼마나 만족스러울지 모르겠으나 청춘을 쏟아 부어야 할 ‘인생’에게 너무미안하지 않겠느냐. 한 시간 남짓나는 그를 설득했고, 뒤돌아선 그가 내게 보낸 문자메시지는 이랬다.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의사가 되고 싶기에 올해 의전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아마도 내 설득에도 불구하고 입을 굳게 닫고 있던 그가 내게 던진 대답이었을 게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에게, 꼭 의사가 되고 싶다면 올 한해만 더 도전해봐라, 안 되면 과감히 다른 길을 모색해라, 열정을 낭비하는 건 인생에게 미안한 일이다, 고 했던 듯하다.
의사가 돼서 국제분쟁 지역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그의 꿈과 열정을이어줄 제도는 없을까. 실패한 정책으로서 곧 퇴출될 ‘의학전문대학원’의 설립 의미를 그런 가치에서 찾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열정이 낭비되지 않은 우리사회를 꿈꾸고, 두 젊은이의 앞날에 신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빌어본다.
[2015년 1월 23일 제60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