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젯밤 심야 퇴근길 시골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요 며칠 새 영 통화조차 하지 못한 죄스러움을 달래기 위해서다. 식사는 잘 하시느냐, 밤마다 족욕(足浴)은 빼먹지 않고 하시느냐, 아프다던 무릎은 좀 어떠시냐. 어머니는 겨울 되면 손발이 매우 시리다며 통증까지 호소한다. 그래서 권한 게 족욕이었다.
“괜찮다, 너희는?” 어머니는 짧은 한마디로 화제를 곧장 내게로돌린다.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한 내 말이 꽤 이어지고는 어머니께서, 시간 나면 와서 김장김치 가져가라, 면서 전화기를 끊었다. 거들 일손이 없자 이웃에 사는 집안 형에게 얹혀서 김장을 했단다. 말이 얹혀 하셨다는 게지…, 여든셋의 노인이 감내하기엔 벅찬 일이다.
요새 김장 때문에 바쁘다. 우리병원에선 매년 수천 포기의 배추로 김장을 담그고 홀몸어르신 등 이웃에 나눠주고 있다. 올해도 여름부터 부산 외곽지에 주말농장을 마련해 배추와 무를 심었다.
그린닥터스 학생들과 한국건강대학 어르신들이 뙤약볕 아래 일일이 물주고, 벌레 잡아가면서 키웠다. 한데 김장이란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밭에서 캐고, 차에 싣고, 절이고, 씻고, 양념 치대고, 담고, 부산 전역에 나눠주고…. 배추와 무,각종 양념류며, 이를 다듬고 준비해야 할 손들은 또 얼마나 필요한가. 병원식구들이 수백인들 무엇하랴. 손 때 매운 일손들이 필요하다. 새마을부녀회원, 한국건강대학의 어르신들이 가세해야 비로소 ‘김장’이라는 명품이 만들어진다.
김장 4천포기 하는데, 사람들은 왜 그리도 많이 필요한지, 게다가 물차까지 3세대씩이나 요청하란다. 소방서의 바쁜 일정을 헤집고겨우 확보했더니 물차 지원시간이 맞지 않다고 타박이다. 물은 절인 배추를 헹굴 때 많이 필요하므로 오후 늦게 가져오라고 한다. 한데 소방서가 비상 출동 예정 탓에 힘들다 해서 끝내 캐낸 배추를 절임공장으로 보냈다. 덕분에 일손은 덜었지만, 그만큼 정성도 준 듯해서 영 맘이 개운치 않다.
김장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 하나. 유네스코에 유형문화재로 등재된 우리나라의 ‘김장문화’에 대해 내가 엄청 무지하다는 것. 매년 어머니나 장모가 보내주신 김장김치를 또박또박 받아먹기면 하는 내가 미안스러워지는 요즘이다. 묵은지 죽 찢어 한 입 넣고는 그 속에 농익은 어버이 사랑과 이웃 정성까지 맛볼 수 있어야만 진짜 김장문화를 이해하는 건 아닐까.
[2014년 12월 26일 제59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