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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수의 세상만사

“여자이니까”·····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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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 과장이 내 사무실을 방문하겠단다. 이쪽에서 찾아뵙겠다고 하는데도 굳이 그쪽에서 오겠다고 해서 께름칙했다. 퇴근 무렵 에스는 한손에 커피를, 한손에 빵을 들고 나타나 내게 내밀었다. 헷갈렸다. 예스일까, 노일까. 쉬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상대가 먼저 얘기를 꺼낼 때까지 참기로 했다. 둘 다 본질은 애써 외면한 채 언저리만 겉돌았다. 대화는 여자인 에스가 주도했다. 서울사람이어서인지 말도 잘한다.
 
요 며칠 사이 네 살배기 애를 돌보던 친정 엄마가 갑자기 여행을 떠나버렸다, 아마도 힘든 육아 탓에 스트라이크를 벌인 것 같다, 지금부터 어른들의 손길이 절실한 아이여서 여간 신경이 곤두서는 게 아니다, 아이를 위해 얼마간 직장 일을 접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혹시 이 병원에 한나절만 하는 일자리는 없는지…. 다틀렸다.
 
얼마 전 한 여자의사에게 입사를 제안했다. 내민 조건도 파격적이었다. 오케이 사인을 확신했다. 한데 종무소식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 이라며 자위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갑갑했다. 전화를 걸었다. 진료 중 의사들과 대화하기란 그리 수월한 게 아니다.
 
저녁에도 역시 불통이었다. 얼마나 좋은 조건인데…, 하면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건만, 끝내 ‘육아민국(育兒悶國)’에 사는 그의 고민 앞에 나의 제안은 무참히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미안하다, 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했다.
 
자신을 지나치게 좋게 평가해주는 병원과 병원장에게 고맙기 그지없다고 했다. 날이 갈수록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 또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단다. 가뜩이나 늦게 본 아이에 대한 죄스런 마음을 떨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날 직장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그의 애매한 얼굴이 문득 며칠 전에 본 한 케이블TV 드라마 주인공의 얼굴과 겹쳐진다.
 
맞벌이 부부의 가정. 먼저 퇴근한 아내가 한밤중 파김치가 돼 들어오는 남편에게 씁쓰레하게 말한다. 아이의 그림에 내 얼굴이 없다고. 남편은, 난 아예 엎어져있더라, 하고 서로 위로한다. 이튿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허겁지겁 뒤돌아서는 아내는 급한 회사전화 때문에 아이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엄마는 뒤돌아본다. 아이가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있다. 엄마는 비로소 깨닫는다. 왜 아이의 그림에 자기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은지를.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늘 뒤돌아서는 엄마의 뒷모습만 봐왔던 게다. 엄마는 눈물을 삼키며 다가가 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얘기한다. 다녀오겠습니다!엄마들이 그리는 대한민국의 얼굴은 어떨까. 눈코입귀 없는 괴물은 아닐까.
 
한국의 전체 노동인구의 42%가 ‘시간 빈곤’ 상태라고 한다(‘시간 빈곤’이란 1주일 168시간 중에서 개인 관리와 가사·보육 등 가계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뺀 시간이 주당 근로시간보다 적을 경우를 의미한다.). 숫자로는 930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 56%에 달하는 510만 명이 여성이란다. 대한민국이여, 더 이상 등만 보이지 말고 슈퍼맘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라
 
[20141120일 제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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