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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수의 세상만사

제노비즈의 경우, 그리고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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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뉴욕 퀸즈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키티 제노비즈(Kitty Genovese)라는 여자가 강도를 당했다. 그는 범인의 공격으로 피투성이가 된 채 거리를 쫓겨 다니며 구원을 요청했다. 그녀의 목숨이 경각에 달릴 만큼 상황은 급박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녀는 끝내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이 장면을 창문을 통하여 바라본 사람들이 무려 38명이나 됐다. 맘을 졸이며 쳐다만 볼뿐 한 사람도 전화로 경찰을 부르거나 거리로 나가서 그를 도와준 이가 없었다. 나중에 이들 38명이 경찰에서 털어 논 대답은 이랬다.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 중에 나 한 사람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겠지.” 누군가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이를 수수방관하는 인간심리를 ‘제노비즈의 경우(Genovese Case)’라고 한다.
 
지난주 토요일 오후 퇴근길 온천천 갈맷길에서 위험에 빠진 노인과마주쳤다. 칠십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물가에 바짝 붙어서 비틀거리며 걷던 그의 몸이 갑자기 무너지듯 쓰러졌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몇이 걸음을 일순 멈췄다. 넘어진 사람보다 서 있는 곁의 사람 눈치를 먼저 살핀다. 주뼛주뼛한 자세로 똑같이 쓰러진 노인에게 다가선다. 노인이 일으켜 달라고 도움을청한다. 노인에게서 술 냄새가 짙게 풍긴다. 일단 안심이 됐다. 혹시심정지 상태에 빠진 건 아닌지 걱정했던 맘을 살짝 내려놨다. 몸이 절도록 낮술을 드신 모양이다.
 
축늘어진 그를 장년 둘이 겨우 일으켜 세웠다. 119를 부를까요?, 하는 젊은 여대생의 호의를 가볍게 물리친다. 함께 그의 구조에 덤벼들었던 이들이 일순 밀물처럼 빠져나간다. 아마도 취객의 주말 일탈쯤으로 치부했을 게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몸을 빼내려던 나를 붙들고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죽고 싶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반쯤 울음이 섞인 음성이다.
 
이때부터 내 머릿속은 잔머리 굴리는 소리로 쩌렁거린다. 그냥 지나칠 걸 괜히 나섰나, 하는 맘이 먼저 일었다. 그래, 옆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면 나 역시 지나쳤을 게다. 하지만 이젠 모두 떠나고 혼자다. 비록 취객이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듯했다. 한데 내 ‘귀찮음’이 먼저 그의 곁에 더 이상 머물지 말 것을 단호히 요구한다. 혼란스럽다. 지나가는 이들은 힐끔거릴 뿐 더 이상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이제 그는 전적으로나만의 문제로 다가왔다. 경찰서로 모실까, 119를 부를까, 그랬다간 상황설명하고 한두 시간은 훌쩍 버리겠지, 온갖 잔머리로 머릿속만 지끈거린다.
 
그의 옆구리를 부축해 물가에서 먼, 그늘진 곳으로 안내했다. 노인은 자꾸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죽고 싶다고. 그러면서도 꽉 쥔 내 손을 놓지 않는다. 술주정 같다. 집에 가는 것 외에 특별히 바쁜 일정은 없었지만, 빨리 벗어나고 싶어진다. 괜히 이 일에 끼어들었다는자책이 계속 꿈틀댄다. 그를 벽에 기대게 하고는 현장을 떠났다.
 
죽고 싶습니다, 는 그의 흐느낌이 내 뒷덜미를 잡아당긴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애써 무시해버렸지만, 맘 한 구석이 영 찜찜한 하루였다. 앞으로 똑같은 상황에 부닥치면 아마도 외면하고 그냥 지나칠것 같다. 제노비즈의 경우는 늘, 매일같이 우리와 동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141027일 제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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