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도회지 빌딩들이 까마득하다. 수은주는 급격히 떨어졌고, 게다가 데려온 바람이 품고 있는 한기까지 살을 엔다. 지친 삶들의 아궁이로 안내돼야 할 연탄들이 자꾸 보챈다. 빨리 데려달라고.
끊긴 찻길을 누군가는이어야 한다. 역시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다란 인간 띠를 만든다. 아이의 손에서 전해진 까만 연탄은 엄마의 손을 거쳐 또 다른 아이에게, 어른들에게 건네진다. 앞으로 나아간다, 따뜻함이 못내 그리운 허름한 집 안으로. 물끄러미 그 장면을 바라보다 문득 도종환의 시를 떠올린다.
담쟁이.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 같은 아이들의 손이 험난한 복지사각의 벽을 타고 올라 세상의 온기를 전한다. 담쟁이 손들이 전해준 연탄들이 할머니의 집에 차곡차곡 쌓아진다. 이 연탄 한 장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거다. ‘방구들 선득선 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하늘 아래 첫 동내인 안창마을에서. 시커멓게 얼룩진 아이들의 앳된 얼굴에서 대한민국의 뜨거운 미래를 찾는다.
아이들은, 안도현 시인의 시(연탄 한 장)처럼,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한 장의 연탄이 됐다. 머리 희끗한 장년은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 여태껏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던’ 제 삶을회억하면서, 아이들에게 가만히 박수를 보낼 뿐이다.
[2017년 12월 22일 제95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