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따끈따끈한 추억불이라도 꺼내야 할 판. 한겨울 할아버지 방에 놓였던 화롯불을 뇌리에서 꺼내 한기를 데운다. 아파트 화단의 동백 꽃봉오리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다. 뜨거운 열기에 부풀어 오르는 게 세상사 이치이거늘.
동백 꽃봉오리는 사람들이 호호, 내뿜은 차가운 입김 받아 부푼다. 시퍼런 잎새 숲에 화기가 느껴진다. 지난 여름의 불볕을 모아두기라도 했을까. 그 옛날 할아버지 방 화롯불 속 불씨라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동그마니 놓여 있는 화로에 여린 손을 올렸다가 기겁을 했다. 검은 재속에 감춰진 뜨거운 불씨를 어린 내가 깜빡했던 거다. 시커먼 재를 헤쳐 보면 이내 화로는 시뻘겋다 못해 파란 불꽃까지 날름거리며 내게 덤벼든다.
동백 꽃봉오리는 빨간 열정과 사랑을 머금고 있다. 탐스런 꽃봉오리에 손을 대보려하다가 멈칫 한다. 손이 델까. 마음속으로, 빨개서 요염하기까지 동백꽃에게 미리 말을 걸어본다.
‘네가 있어 / 겨울에도 / 춥지 않구나 // 빛나는 잎새마다 / 쏟아놓은 / 해를 닮은 / 웃음소리 // 하얀 눈 내리는 날 / 붉게 토해내는 / 너의 사랑 이야기//… <이해인 ’동백꽃에게>’
[2017년 11월 17일 제94호 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