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수거함에 남편 옷을 맡겨뒀던 아내는 끝내 퇴근길 다시 세탁소에 들렀다. 그 운영방식이 낯선 탓에 못미더워서 그랬을 터. 비밀번호까지 설정해 넣어둔 옷이 하루가 지나도록 그대로 자동수거함에 들어있더란다.
화나서 독 오른 아내는 항의라도 해보려고 세탁소 창문에 나붙은 전화번호를 탐색했다. 곳곳에 덕지덕지 종이쪽지들이 나붙어 있었다. 이미 내 아내처럼 문 닫히고 굼뜬 세탁소 소행에 화난 주민들이 종이 쪼가리에 제 속상함을 담았을 터이다. 몇 개 죽 훑어보던 아내는 이내 화난 제 가슴부터 서둘러 가라 앉혔다.
진정된 가슴은 깨끗하게 세탁된 듯 종지쪽지 글자들을 또렷이 받아들였고, 이내 촉촉이 젖어들어 먹먹해졌다. 문을 닫고 있는 세탁소의 사연이 기막혔다. 주인장이 지난 8월초 여름휴가 삼아 베트남인 아내와 함께 나선 하노이 처가 나들이 길에 나섰다가 그만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거다.
한 달넘게 중환자실에서 투병중인 그를 대신해서 세탁소 주인의 동생이 사과문을 붙여 놨다. 그 옆으로 덕지덕지 나붙은 쪽지들도 죄다, 아저씨 얼른 쾌차하세요, 항상 웃는 얼굴 어서 보고 싶어요, 하며 그의 빠른 쾌유와 무사귀국을 빌고 있었다.
그 공감 쪽지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주민들의 급한 속사정도 공감 간다. 빨리 쾌차하시라면서도, 세탁되지 않아도 좋으니 남편 옷을 빨리 돌려받고 싶다, 곧 개학인데 아이의 교복이라도 찾아가고 싶다, 하면서 세탁소 주인의 친인척이나 지인들의 연락처라도 알려달라고 호소한다.
아내는 자동수거함에 든 내옷을 꺼내 인근 최신 빨래방에 맡기고 왔다고 털어놨다. 아내 얘기 듣고 몹시 부끄러웠다. 자동수거함을 설치한 것을 두고, 지난시절 불친절과 엎어서 얼마나 주인을 비아냥댔던가. 알고나면 이해하고도 넘칠 안타까운 사연들이 숱한 오해 속에서 이웃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게 우리네 삶인 듯하다.
이웃의 단골세탁소 아저씨의 사연처럼 검증되지 않은, 아주 단편적인 조각사연 하나를 오해하는 바람에 진실 전체를 호도하는 지금 우리의 꼴이 얼마나 우스운가. 아저씨, 힘내세요!
[2019년 9월 20일 제116호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