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3일

임종수의 세상만사

역사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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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역사를 닮았다는 느낌이다. 역사가 승자의 개인사를 줄거리로 엮어가듯, 영화도 주인공을 중심으로 얼개를 짠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개인사로 기억되고, 영화도 주인공의 역할로 뇌리 속에 박힌다.

그 영화는 달랐다. 주인공이 없었다. 더 정확히는 등장인물들이 죄다 주인공 같아서 아예 주인공이 없다는 착각에 빠졌을까. 일제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세력이 무장해서 최초로 일본군에 맞서 대승한 ‘봉오동전투’를 다룬 영화. 코흘리개 때부터 들어왔던 홍범도, 이범석, 김좌진장군 등 항일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냥 우리네 이웃에 사는 장삼이사(張三李四), 그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이었다. ‘봉오동전투’는 잘난 지식인들이나, 신식 무기로 잘 훈련된 군인들이 이끌지 않았다. 일제에게 농토를 빼앗긴 농민, 일터를 잃어버린 근로자, 일제 수탈로 생계가 막막해진 도시 빈민들이 주인공이었다.

영화 ‘봉오동전투’ 속 주인공들은 마침내 광복절 74주년을 맞이한 올해, 역사속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셈이다. ‘아무도 흔들지 못할 내 나라’를 되찾으려고 나선 이들은 우리 같은 평범한 백성들이었다.

왜 그들이 나섰는지 영화속 황해철이 절규한다. “나라 뺏긴 설움이 우리를 복받치게 만들어서 쟁기 던지고 여기 모여 군인이 되었다.” 당시 독립운동에 나선 이들이 어디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다. “독립군 수는 셀 수가 없어. 왠지 알아?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내일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

어디 영화 속 뿐이랴. 올해 광복절엔 일본의 경제전쟁 탓에 온 국민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일본 규탄집회장으로 달려가고, SNS를 통해 저마다 일본이 도발한 경제전쟁에 분연히 맞서 이겨야 한다고 결기를 표출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 위기에 팍팍한 삶이 지칠 대로 지쳐가지만 일본을 향한 분노의 강도는 커져만 간다. 주인공이 없어진, 그래서 모두가 주인공으로 자처하며 ‘기해 경제독립운동’ 최전선에 나선 거다.

기미 만세운동을 조기에 제압하지 못한 이유가 거사의 주인공이 없는, 한민족 자발적이어서 그랬다는 100년 전 일제 총독부의 정세분석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럴 듯한 분석아닌가. 100년이 지난 올해 ‘기해 경제독립운동’ 역시 뚜렷한 주인공 없는, 국민 모두가 주인공인 독립운동이다.

이제 남은건 이를 빨리 눈치 채지 못한 일본 아베정권의 후회뿐이다. 영화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한 소년병 유키오가 월강추격대장 야스카와 지로에게 부르짖듯 던진 한마디를, 고스란히 아베 정권에게 되돌려준다. “일본인이야말로 열등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2019823일 제1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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