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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수의 세상만사

푸른 눈의 소록도 할매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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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야당 국회의원의 ‘한센병망언’이 최근 봤던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제목은 ‘마리안느와마가렛’. ‘이역만리 낯선 땅 소록도를 찾아 43년 간 사랑을 전한’ 두 외국인 간호사의 얘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였다.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은 십대에 ‘평생토록 자신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바치는’ 종신서원(終身誓願)을 한 뒤 남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살려고 간호사의 길을 걷는다. 둘의 첫 헌신지가 소록도. 막 전쟁을 치른 한국, 그것도 같은 동포들도 꺼리는 나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뛰어들었다.

인도에서 전문적으로 한센병을 공부한 두 젊은 간호사는 1960년 중반부터 벨기에 다미안 재단과 함께 소록도에서 한센병환자들을 돌본다. 맨손으로 나환자들의 상처에 고름을 짜내고 진물이 흘러내리는 상처부위에 코까지 갖다 댔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한센병을 감염병으로 인식해, 한센병 부모들이 나환자가 아닌 어린 미감아 자식들과 상봉하려 해도 길 양쪽 끄트머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만나야 했다.

의료진까지 대개 장갑낀 채 멀찍이 거리 두고 진료했을 정도였다. 코앞으로 다가와 맨손으로 자신들의 상처를 만지고 돌봐주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에게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은 ‘처음으로 사람대접 받았다’고 기억한다. 1970년대 초 다미안 재단이 임무를 마치고 소록도를 떠날때에도 두 간호사는 무급으로 남아 2005년까지 자원 봉사의 길을 걷는다.

‘환자는 머리 아닌 손과 발로 돌봐야 한다’는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틈만 나면 나환자들을 숙소로 불러 생일잔치를 차려주고 식사까지 대접했지만 정작 숙소에서의 그들 삶은 ‘텅빈 삶’이었다. 아주 기본적인 가재도구만 갖추고 살았다. 자원봉사자 신분이었던 두 할매 천사는 비자 연장을 위해 매년 고향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그때마다 둘은 가톨릭부인회 등을 통해 소록도 한센인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벌였다.

그 후원금으로 소록도에 한센인 목욕탕을 짓고, 이불 등 생활필수품들을 지원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의료 돌봄과 경제지원 외에도 절망하는 한센인들을 격려하고 삶의 희망을 주는데도 애썼다. 그들의 헌신 덕에 소록도출신 사제가 탄생하고, 맹인 오르간 연주자의 길을 걷는 한센인도 나왔다.

2005년 11월 23일 소록도 주민들 앞으로 편지 한통이 배달된다. 보낸 이는 할매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별의 편지 한통 남기고 둘은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평생 두 할매와 함께 살아갈 것이라 여겼던 소록도 한센인들은 갑작스러운 이별통지에 당황해하고 서운했으나 나중에 사연을 전해 듣고 마음 아파했다.

몸이 아팠던 마가렛은 외려 한센인들에게 제 몸이 짐 될까 귀향을 서둔 것이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떠나 70대 할매가 되어 돌아온 고향 인스부르크는 둘에게 타향이나 진배없었다. 갑작스레 바뀐 고향생활 환경이 할매들을 힘들게 했다. 마가렛은 대장암수술로 건강해졌지만, 마리안느는 우울증을 겪은 끝에 치매까지 걸리게 된다.

고단했던 한국의 소록도 생활을 제대로 얘기해주지 않아 둘의 삶을 전혀 몰랐던 고향가족 친지들조차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비로소 둘의 숭고한 헌신을 듣게된다. 제 나라에서조차 천덕꾸러기 취급받았던 소록도 한센인들. 그들에게 큰 할매 마리안느와 작은 할매 마가렛은 천사의 현신이었다.

두 할매 천사들의 삶이 소록도 100주년을 맞아 재조명되면서 소록도 한센인들과 지역사회가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센인들도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지만, 그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공감기능이 나균보다 더 지독한 균에 감염돼 점점 곪아 문드러지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


[2019523일 제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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