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2월 04일

임종수의 세상만사

평화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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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양떼처럼 헤맸다. 몇 번찾아왔다는 분들도 그때마다 헷갈리는 모양이다. 주소지 마을로 들어섰으나 여전히 갈팡질팡. 지독히 은둔하고 계시나 싶었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졌으니 그럴 수도 있을 터. 집안일 거드는 자매님과 여러 차례 통화 끝에 겨우 집을 찾았다. 오래된 느낌의 집이 그 주인과도 닮았다. 평온하고 따뜻했다.

마당가의 꽃들도 가을햇살 받아서 따스한 기운을 내뿜었다. 작은 담벼락에 서 있는 감나무의 감들도 빨갛게 홍시로 빛나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은자(隱者)의 집안으로 들어서니 창밖의 평온과 평화가 더 돋보였다.

올해 여든둘. 희끗한 머릿결로 세월을 가늠했으나 정작 신부님의 얼굴에선 그 확신조차 무너졌다. 군살 없는 몸매,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자세, 거의 주름살 없는 얼굴이었으니. 짧게 인사 나누고는 잠시 자리를 떴다가 다시 거실로 나온 신부님은 손에 종이를 쥐고 계셨다. 우리 일행에게 한 장씩 나눠주셨다, 말없이.

종이엔 ‘평화의 기도’라는 제목의 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유명한 성 프린치스코 신부의 ‘평화의 기도’였다. 남북화해 무드 속에서 개성병원을 추진하고 있는 봉사단체 그린닥터스의 회원들이 그 평화의 여정에 신부님을 모시기로 했다.

고단한 사제의 짐을 내리신 은퇴 신부님께 무슨 말로 다시 세상사에 동참해달라고 조를까 했던 걱정은 ‘평화의기도’로 가을햇살처럼 짧게 끝났다. 그린닥터스재단 개성병원추진위원회 고문직도 흔쾌히 수락하셨다. 조곤조곤 이어지는 신부님의 말씀에서 나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그분의 열정과 열망을 확인할 수있었다.

길 잃은 양떼들에게 ‘평화의 기도’로서 올바르게 길을 안내 하시겠다니 고마울 밖에. 그날 가을 햇살은 남녘과 북녘 땅을 따사로이 내리쬐고 있었다. 삼랑진을 빠져나오는데 자꾸 눈길이 신부님이 주신 ‘평화의 기도’에게 쏠린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 다툼이 있는 곳에 사랑을, /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 의혹이 있는곳에 신앙을, /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 프린치스코의 ‘평화의 기도’>신부님의 삶이 ‘평화의 기도’문에 겹쳐진다.

대한민국이 암울했던 시기, 미움·다툼·분열·의혹·그릇됨·절망·어두움·슬픔의 현장에서 때로는 정의구현 사제로서, 때로는 인권과 민주화의 투사로서 앞장섰고, 언제나 서로를 위로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게 했다. 우리는 고단하고 힘들 때마다 그분, ‘송신부님’을 부른다, 식당에서 ‘이모님’ 찾듯이. 개성병원을 추진하는 그린닥터스 재단도 한반도 평화의 여정에 그분을 불러들인 셈이다.

신부님이 주신 ‘평화의 기도’문이 그린닥터스 재단의 가치와 정신을 품고 있는 듯해서 더욱 반가웠다. ‘그린닥터스재단은 국제적 재난지역과 국가재해나 대형인명사고 등 응급의료 구호체계가 시급히 필요한 곳이나 의료시설이 부족한 곳에 정치나 인종이나 국가를 뛰어 넘어 범 인류의 건강 행복을 위하여 의료인을 긴급 파견하여 구제활동사업을 목적으로 한다. <정관 1조>’

[20181119일 제1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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