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3일

임종수의 세상만사

직장 내 괴롭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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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관의 대표인 지인에게서 놀랄만한, 충격적인 사연을 들었다. 최근 한 직원이 사직서를 들고 와서 ‘제발 하루빨리 수리해 달라’고 울먹일 듯 통사정하더란다. 워낙 갑작스런 일이라 어리둥절해하는 지인에게 그가 털어놓은 사연은 비극 그 자체였다.

입사한지 반년 남짓 직장동료들의 끝없는 괴롭힘에 한때 자살충동까지 일으킬 정도로 몸과 마음이 피폐됐으나 한시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애원 하더란다. “왜. 지금까지 그걸 내게 이야기하지 않고, 그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왔느냐”고 했더니, 윗사람인 지인에게 다가가려면 그들의 괴롭힘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대개는 직장에서 은밀하게, 때로는 SNS상으로 노골적으로. 몇 명 되지도 않는 직원들이 똘똘 뭉쳐서 ‘조직질서를 뒤흔든 낙하산 채용’이라고 비난하고 괴롭히는 바람에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고충을 털어놓을 데가 없었다는 거다.

“당장 병원 진료부터 받고 사직 문제는 나중에 의논하자”고 달랬더니, ‘정신과 진료기록이 남으면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직장에서 취업하기 어려우므로 병원에 쉽게 갈 수도 없다’며 무조건 집에서 쉬고 싶다며 사표 수리를 채근하더란다.

그가 ‘인격살인’을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직장 내 괴롭힘이 존재했다.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막내인 나와 동기들은 매일 술자리 등에 끌려 다녔다. 질펀한 술자리엔 언제나 선배들의 전설 같은(?) 무용담이 곁들여졌고, 새내기들은 경이로운 시선을 바라봤다.

대개 화기애애했으나, 딱 선배 한 명이 새내기들을 괴롭혔고, 그 중 한 동기에게 더 가혹했다. 그와의 술자리는 차라리 따귀라도 맞는 편이 낫다고 여겨질 만큼 언어폭력이 질펀했다. 출신학교나 외모에 대한 비하에서부터 수습과정의 무능력까지 질근질근 씹어댔다. 급기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친구가 그에게 덤벼들었고, 술자리를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가 다시 추슬러서는 잘 매조지었다.

이튿날 일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곧바로 선배들이 우리기수들을 집합(?)시켰고, 호되게 당했다. 전날 일의 사단이야 무엇이었든 후배가 선배에게 덤벼든 ‘하극상’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게 선배들의 논리였다. 한 달여 우리는 철부지 개망나니 취급을 당해야 했다.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조폭 같은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동기한 명은 일찍이 직장을 옮겨버렸다. “아, 지긋지긋하던 기수문화에서 해방이다!” 조직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계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며 떠나던 날 그 친구가 남긴 말이다.

이태 전 법까지 만들어서 근절하려는 직장 내 괴롭힘, 한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는 계급이나 서열에 익숙한 기수문화와 편 가르기가 빚어내는 악마 아닐까. 그때 나의 직장이나 지금 그의 직장이나.

[20201228일 제1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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