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많지 않은 놀이 중 하나가 장기나 바둑 두기였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나는 상대적으로 더 머리를 써야 하는 바둑보다는 장기를 더 빨리 익혔다. 친구들끼리 왁자하게 놀다가도 심심할 때면 판 펼쳐놓고 내기장기를 뒀다.
주로 이마에 꿀밤 때리기를 걸고서. 두는 선수(?)보다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훈수두기로 더푹 빠져든다. 포(包)를 건너뛰어 장(將)을 보호해라, 졸(卒)로 차(車)의 길목을 차단하지 않으면 곧장 장(將)이 먹힌다, 일단 상(象)으로 상대 졸(卒)과 맞바꾸면서 공격루트를 모색하는 게 급하다.
선수는 곳곳에서 쏟아지는 훈수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한다. 판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고 판단한 선수 쪽은 곁에서 훈수를 둘 때마다 ‘이러다 지게 되면 반칙패니 내가 이긴 거다’며 엄살 부린다. 그리고 장기 패를 들고 주저하는 상대선수에게 잊지 않고 내뱉는 마지막 경고 한마디. “야, 일수불퇴(一手不退)야!” 한중 최고의 기사끼리 맞붙은 세계바둑대회에서 우리나라 1위 기사가 PC마우스 조작 미스로 중국의 1인자에게 졌단다.
대국은 코로나19 탓에 각자의 나라인 한국과 중국기원에서 비대면 화상으로 진행됐다. 한데 우리나라 기사가 초반에 마우스를 조작하다가 터치패드에 선이 걸리는 바람에 엉뚱한 곳에 착점을 하게 됐고, 중국 기사가 이실수를 놓치지 않고 공략함으로써 승부는 불계패로 끝나고 말았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세계 최고수의 엉뚱한 착점’이라, 대회 관계자에게 마우스조작 미스라고 훈수해봤으나 돌이킬 수 없었을 거다.
왜냐고? 일수불퇴니까! 한번 놓은 돌이나 패는 결코 물릴 수 없다는 게 바둑과 장기판의 금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네 삶도 끝없이 선택을 강요받게 되고, 그 선택엔 반드시 일수불퇴의 원칙이 따른다. 코로나가 빚어낸 웃픈 일에서 새삼 삶의 지혜를 다시 추슬러본다.
[2020년 11월 20일 제128호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