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2월 04일

임종수의 세상만사

섣달 보름달

임종수.jpg

둥근 보름달이 떴다. 음력으로 따지자면 기해년 마지막 섣달 보름달인 셈이다. 며칠 동안한여름처럼 비를 쏟아내던 먹구름 하늘이 오랜 만에 쾌청하다. 퇴근길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창밖으로 시선에 여유를 담아보낸다.

텅 빈 듯해서 공허하기만 했던 가슴 속에 보름달이 둥글게 들어찬다. 작은 두 눈으로 채우기엔 감질 난다. 오감을 총동원했다. 입으로 들이키고, 귓속에 담아내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이마저 모자라서 끝내 두 손을 뻗쳐 커다란 보름달을 욕심 많은 가슴 속에 억지로 우겨넣는다.

캑 막혀오는 숨길이라도 터보려고 모처럼 도심 거리를 걸었다. 밤 술래잡기가 펼쳐졌다. 달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어디든 꽁꽁 숨어봐라, 넌 어차피 부처님 손바닥 안 신세야!’ 하는듯. 달은 내 걸음걸음마다 뒤쫓는다. 달리 숨을 데가 없다. 달이 드론처럼 나를 추적한다. 빌딩 처마 밑으로 몸을 숨겼다 싶으면 커다란 유리창에 보름달이 스파이더맨처럼 달라붙어 내게 지그시 미소를 날리고 있다.

이번엔 내가 술래 되어 달을 쫓는다. 드넓은 하늘 위에 제 동그란 몸을 죄다 드러낸 터라 마땅히 숨을 데가 마땅찮다. 빌딩 사이를 쫓아다니며 달과 나는 술래잡기에 빠진다. 앗, 달이 사라졌다. 한순간 방심에 달의 흔적을 놓쳤다. 두리번거리다 내 눈이어디 한곳에 혐의를 두고 미간을 좁힌다. 휘영청 가로등과 휘황찬란한 네온불빛 틈새서 숨죽이고 있는 보름달을 찾아냈다.

섣달 보름, 서면 한복판에서 벌어진 둘의 술래잡기 놀이는 나를 순식간에 50년 전 노루밭 들판 한가운데로 데려갔다. 고향의 들내가 콧속으로 파고든다. 달빛이 교교히 흐르면서 개구쟁이들의 등짝을 살며시 어루만진다.

그렇게 해서 술래인 세월은 여전히 뚜벅뚜벅 나를 쫓는다. 삶의 술래잡기에 행여 내가 도망이라도 칠까 해서 밀착 감시하는 걸까. 해와 함께 하는 경자년도, 달과 함께 경자년도 모두에게 행복 충만한 한해 되기를 빌어본다. 섣달 보름달을 쳐다보면서.


[2020124일 제12015]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